학교란 무엇인가

# 완벽한 세상, 완전한 교사

볕좋은마당 2022. 3. 12. 11:00

매년 교육실습생들이 온다. 그 시기가 꽃이 피고 새가 울어 덩달아 우리의 마음도 싱숭생숭해지는 4~5월이다. 가뜩이나 갑갑한 학교가 싫은 아이들은 그냥 누군가가 새로 온다는 소식에도 마냥 신난다. 이렇게 교생들이 오면 (각 잡히고 진지해야만 할 것 같은) 면학 분위기가 흐려지기 마련이라, 대학 입시에 목매는 대개의 인문계 고등학교 중엔 교생을 아예 받지 않는 곳도 있다. 하지만 우리 학교처럼 무슨 부속이니 병설이니 하면서 대학교 재단에 속해있으면 관례상 교생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매년 같은 캠퍼스 안의 K대학교를 비롯해 주변 H외대, K대학교 등의 교생들을 받아 한 달간 실습을 시킨다.

과목이나 담임 여부에 따라 교사 한 명이 교생 한두 명을 지도하는데, 4주간의 과정이 끝나면 그간의 수고에 대한 격려와 인사차 가벼운 음주와 저녁을 같이 하기도 한다. 나는 담당 교생과의 식사 중에 얄궂은 화두를 던지곤 했다.

"교생 선생님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를 기억해 보세요. 도대체 실력이 형편없어서 수업을 겨우겨우 하거나, 인성이 글러먹어서 선생이라고 하기엔 영 아닌 사람이 꼭 한둘은 있지 않았나요?”

이런 도발적인 질문에 교생들은 당황하기도 하지만 잠시 회상을 하다가는 답하는데, '그런 분을 본 적이 없어요'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우리나라의 모든 중고등학교에 '구제 불능' 교사들이 한둘은 꼭 있었다는 증거다. 같은 업계(?)를 이렇게 발가벗겨도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곳에나 이상한 사람은 꼭 있기 마련이다. 내가 학교 다닐 때도 '어떻게 저런 사람이...'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선생님이 꼭 있었으니 사람 사는 세상은 엇비슷한 모양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더 심한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그런 이상한 교사들은 학생들을 위해서 학교를 그만두거나, 더 이상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퇴출해야 할까요?"

교사가 되겠다는 희망으로 열심히 교육실습을 마친 교생들은 아직 대학교/대학원을 졸업을 남겨 둔 상태다. 험난한 사회생활을 시작하지도 않은 교생들에게는 갈수록 난감한 질문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자신의 실습 태도를 평가하고 점수를 손에 쥐고 있는 지도교사 면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누군가. 거의 모든 교생들이 잠시 고민은 하지만 이어 나오는 대답에는 뚜렷한 주관에 당당한 기상까지 들어 있다.

"네. 그런 분들은 학교에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그만 두든가, 아니면 퇴출당하는 게 맞죠."

이렇게 생각이 건전하고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내세울 줄 아는 교생을 길러 낸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칭찬받을 만하다. 하지만 내가 여기까지의 '시나리오'를 예상하지 않고 도발을 했을 리가 없다. 맛난 음식과 술을 앞에 놓고 있으니 그에 어울리는 재미난 화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이런 말을 이어간다.

"다 맞는 말인데요, 저는 이렇게도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아침부터 저녁 또는 밤까지 시간을 제일 많이 보내는 곳이 학교잖아요. 그래서 종일 보는 인간의 집합은 바로 교사들입니다.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교사들은 모두 인성 좋고, 실력 짱짱하고, 친절하고, 능력 있고, 인격자들이고... 하여튼 완전한 또는 완벽한 인간이어야 하죠. 그래야 흠결 하나 없는 지식과 역사의 성인들에 버금가는 가르침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겠죠. 그렇게 종일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세상이 완벽하고 인간은 완전하다는 것을 내면화한 뒤 졸업을 하겠죠. 그런데요, 그들이 학교 밖에서 맞닥뜨리는 건 과연 완벽한 세상인가요? 온갖 또라이와 범죄자와, 오락가락 말을 바꾸는 정치인과 협잡꾼과, 불친절한 사람들과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달려들기도 하지요. 그 놈들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거나 실망시키기도 하고, 좌절을 안기기도 할 테죠. 누구나 세상을 살면서 별 인간들을 다 만나잖아요. 청소년기 삶의 거의 모든 시간을 '완전한 인간'들이 가르치는 학교에서 보내고 나서 세상에 던져지는 건 과연 괜찮은 일일까요? 그렇게 이상적이고 순진한 생각으로 살다가 상또라이에게 피해를 보느니 차라리 백신을 맞는 셈 치고 조금 하자가 있는 인간을 한 두 명이라도 학교에서 미리 겪는 게 꼭 나쁜 것만도 아니잖아요. 세상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는 걸 미리 배우는 거죠."

이쯤 되면 교생들의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혼란의 시작을 읽을 수 있다. 완벽한 세상은 없다는 걸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있는가. 교사들이 완전한 인간일 리도 없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최대한 완전에 가까운 교사들만 봐야 한다? 그래서 세상이 완벽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건 백신 주사를 놔주지 않고 전염병이 만연한 세상에 아이들을 내보내는 것과 같지 않은가. 생각할수록 학교의 존재 이유까지 고민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학교는 지식 전수를 위한 곳인가 아니면 험난한 세상을 잘 살아내도록 연습시키는 곳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나의 '궤변'에 교생들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어떤 교생은 그럼에도 교사들은 최대한 완전한 인간상이어야 된다고 했다. 어떤 교생은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 고민을 하다가 나의 반박에 못내 수긍하기도 했다. 이런 걸 보면 어떤 사람에게는 나의 말이 꽤 그럴싸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그러면 이제 나는 세속에 물든, 그것도 약해 빠진 인간임을 고백하며 이 화제에 종지부를 찍는다. 영원히 답할 수 없는 물음표와 전두엽을 어지럽히는 혼란을 남기며...

"그런데요, 이건 그냥 하는 소리에 불과하고요... 그렇다고 제 생각이 바뀌었다는 건 아닙니다만, 이상과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는 게 문제네요. 현실의 학교에선 모든 교사가 완전할 수 없고 어쩌다 또라이도 있음을 인정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제 자식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면... 그건 받아들이기가 좀 힘드네요. 내 아이만큼은 절대로 그런 선생을 만나지 않으면 좋겠어요. 음... 어쨌든 현실은 현실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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