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란 무엇인가

# 이기주의 끝판왕

볕좋은마당 2022. 3. 5. 10:14

사람도 어차피 생존을 하고 유전자를 남겨야 하는 생물인지라 조금이라도 이기적이지 않을 수 없다. 오죽하면 제목이 <이기적 유전자, Selfish Gene>로 된 베스트셀러도 있지 않은가. (사실 이 책은 이론의 본질과는 다른 제목으로 어그로를 끌어 성공한 면이 있다.)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살아가려면 타고난 이기적 속성을 조금씩 양보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려면 눈곱만큼이라도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눈앞의 이익을 접고 앞으로 생길 손해를 감내할 정도의 실천 의지가 우리 각자에게 있는가가 문제다.

 

2017년 가을은 나의 직장 생활 중 극심한 스트레스를 마주했던 때로 기억한다. 땀 흘리는 육체노동이거나 밤새도록 문서를 작성하는 일로 힘들었다면 차라리 나았다. 어마무시한 양의 일일지언정 그 과정과 결과에서 일말의 보람이나 종잇장 무게 만큼의 성취감이라도 준다면 심신이 피곤해도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곱씹어도 무의미하고 말도 안 되는, 오직 형식을 위한 일이라면 단 10분을 해도 스트레스인 것이다. 그 시기엔 그런 업무에 자괴감이 든 나머지 매일 퇴근 후 집 앞 공원에 나가 하염없이 누워있곤 했다. (그 일의 정체는 교원평가 업무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업무의 절차상 학부모 대표 몇 명과 회의를 열고 승인을 받아 통과시켜야 할 일이 있었다. 회의실에 같이 앉아있던 엄마들은 정식으로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이런저런 잡담과 함께 은근한 요구사항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예전에 비해서는 학부모가 학교 운영에 참여하는 통로가 많아졌으므로 개인적인 전화 민원 말고도 의견을 전하는 기회가 열려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대부분은 내 업무와 무관한 얘기라 듣고만 있던 중 어떤 엄마가 불만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왜 이번엔 OO 장학생 숫자가 늘었대요? 예전엔 5명이었는데 올해는 10명이나 더 생겼다는데, 그러면 어떡해요?"

 

그게 왜 불만인지 그 자리에선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내 담당 업무가 아니어서 내 식대로 무심코 생각했다. '그 엄마 아들이 OO 장학금 수혜자구나. 그런데 장학생 인원을 늘리면 자기 아이가 받는 액수가 줄어들 테고, 그래서 기분 나쁘다는 얘기인가 보다'.

 

이 정도는 누구나 미루어 짐작할 만한 수준이다. 그러나 며칠 후 장학생 담당 선생님과의 대화 후 나의 추론이 어설픈 나머지 바보같이 순진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 그건 말이죠. OO 장학생 수를 늘린 건 맞는데, 그렇다고 1인당 받는 액수가 줄어든 건 아니에요. 장학금도 그만큼 더 늘어났어요. 그러니까 장학생 숫자가 늘었어도 아이들이 받는 금액은 똑같아요.”

 

"그러면 왜 그 엄마는 장학생 숫자가 늘어난 게 불만이죠? 자기 아이가 받는 돈이 똑같은데..."

 

"하하하. 음... 뭐랄까... 희소성이 없어지잖아요. 그 엄마는 자기 아이가 전체 5명 안에 들어야 하는데, 15명 안에 들어가는 게 싫다는 거죠."

 

장학생에서 탈락한 것도 아니고 받을 액수가 줄어든 것도 아닌데, 우리 아이만 돋보이게 해주지 않는 학교를 원망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탓을 하기 전에 더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려는 학교의 노력을 칭찬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 여러 아이들이 함께 장학금을 받아 들고 기뻐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흐뭇하지 않을까?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건 당연하지만 다른 사람의 자식을 배척하면서까지 자기 자식만을 사랑하는 건 좀 아니지 싶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특정 시기 동안 학부모로 살아간다. 내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이미 본능에 확실하게 새겨져 있으니 모성애건 부성애건 갖추려는 노력이 따로 필요치 않다. 다만, 더불어 살아야 할 세상에서 공동체라는 단어를 어쩌다 한 번이라도 되뇌어 보면 좋겠다. 남을 밟고 올라서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경쟁 속에서도 '좁쌀만큼'의 성찰이 필요한데 자식에게 '좁쌀만큼'도 손해 나지 않을 일에 그 엄마는 왜 그렇게까지 생각했을까.

 

하늘을 찌를듯한 이기심의 끝판왕을 찾고 싶은가? 그러면 고개를 들어 우리의 학부모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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