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말. 바쁘게 출근하는데 마침 재활용품 내놓은 더미에 심하게 학대(?)받다가 버려진 기타가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1993년산 바하기타 연습용 악기. 네크며 몸통이며 장판테이프로 덕지덕지 발라졌고 아무렇게나 관리된 듯 앞판은 여기저기 깨져 있는 상태. 에라 모르겠다 주워서 차 트렁크에 넣어 싣고 다니다가 드디어 대학로 공방에 가서 부활(!) 작업.
줄이 심하게 뜬 터라 브릿지를 갈고 하현주를 많이 낮춰줘야 해결될 상황. 드디어 유목수가 연장을 들었다. 믿거나 말거나 미국 FBI에서 쓴다는 무려(!) 3,000원짜리 연장으로 무식하게 브릿지를 제거하기 시작.
망치로 계속 때리자 허탈하면서도 어이없게(?) 브릿지가 떨어져 버린다.
여러 군데 깨진 앞판에 접착제를 넣고 클램프로 적당히 눌러서 붙이기 시도.
브릿지를 따로 주문해서 살까 하다가 결국엔 자작하기로 결정. 문제는 유목수가 재단해 온 브릿지의 재료가... 나무 중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흑단(Ebony)! 조금씩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하는 순간.
뭐, 못할 것도 없겠다 하면서 하현주에 걸리는 줄의 높이를 최대한 낮출 요량으로 줄 구명을 6x2=12개로 뚫는다. 즉 12홀 브릿지를 만드는 거다.
흑단은 자르거나 갈 때 아주 매운 냄새가 난다. 종류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이건 생각보다 결 방향대로 잘리는 게 아주 쉽다. 일단 칼로 대충 모양을 내고 매운 냄새를 참아가며 사포로 매우~ 갈기 시작.
결론은... 요렇게 생긴 원형을
이렇게 될 때까지 갈고 갈고 갈고 갈고 갈고 갈았다는 거.. ㅜ.ㅜ
그래도 나름 세계 최초 유일(!)의 수제품 흑단 브릿지인데 격에 맞게 마무리 작업으로 오일을 발라준다.
드디어 강력 접착제로 앞판에 붙이기 직전
접착제가 삐져 나와 아직 모양은 지저분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나? 그냥 받아들여야지.
골고루 힘을 주기 위해 널찍한 판을 얹고 그 위에 클램프 두 개로 누른다. 건조 기간 1~2일.
두둥~! 물소뼈로 된 하현주를 잘 갈아서 제자리에 끼우고 12홀 브릿지에 줄을 맨다. 흑단 브릿지의 위용을 보라.
문제 발생. 열심히 했는데 아직도 하현주가 높은 거다. 파격적으로 낮춰야만 해서 결국 인간 한계를 경험하며 최대한 좁아질 때까지 매우~ 간다. 왼쪽 것과 비교하면 노가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는...
짠~! 가장 낮은 높이까지 줄을 내려보내서 맨 모습. (근데 이게 또 안 맞아서 결국 플라스틱으로 다시 만들어 끼웠다는 슬픈 이야기...)
이번엔 너트(상현주)다. 학대 받은 악기답게 뭐 하나 제대로 붙어 있는 게 없었다. 하긴, 덕지덕지 붙인 장판테이프 자국 지우느라고 세 시간은 쭈그려 앉아 닦기도...
이번엔 상현주를 또 매우~ 갈아서 높이를 맞춘다. 플라이어로 꽉 잡고 슥삭슥삭...
상현주 위에 올라갈 줄의 굵기에 따라 홈을 파 준다. 나름 정교해야 되는 작업인데 대충 했어도 운 좋게 잘 맞는다.
상현주까지 완성하고 줄을 맨 최종 모습. 문제는 너무 갈았는지 높이가 안 맞는다. 급기야 바닥에 이쑤시개를 끼워넣는 신공으로 해결!
부활 전(브릿지는 공방에서 붙여 옴)과 부활 후의 비교. 어엿한 악기로 다시 태어나다.
추신: 이렇게 나의 노가다를 먹고 부활한 1993년 산 바하기타는 약 2주간 집안 이곳 저곳에서 아무렇게나 손뻗으면 잡히는 Third Guitar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러다가 진작부터 이 놈에게 눈독을 들이던 윤미*씨의 애절함에 끌려 결국 내 손을 떠나게 된다. 시집 보내는 마음으로 기증했다는 거지 뭐. 저녁은 잘 얻어 먹었지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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