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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합숙훈련가(讚合宿訓鍊歌) - 부부 Duo들

볕좋은마당 2024. 11. 14. 22:34

제목을 뭘로 지을까 하다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가 갑자기 입에 맴돌았다. 고등학교 때 배운 신라 시대의 향가 제목이 아직도 머리 한 구석에 남아있을 줄이야! (아, 이놈의 주입식 교육...)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신라 화랑이었던 기파랑을 기리는 찬가이다. 그러니까 여기에 숟가락을 얹어 '합숙훈련'을 찬양해 보는 거다.
 
예전에 아내와 Duo로 연주할 기회가 가끔 있었다. 격려의 의미였겠지만 박수를 받을 때마다 '역시 합숙 훈련이 최고'라고 주변에 농을 던졌다. 전공이나 프로 연주자가 아닌 다음에야 아마추어들이 바쁜 일상에서 연습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다. 단 둘의 연습이라도 시간과 장소의 문제를 넘어야 하고 개인 연습이 충분해도 막상 무대에서 완벽하게 호흡을 맞춘다는 게 어디 그리 만만한 일인가.
 
그러니 원하는 시간만큼 붙어 앉아 연습할 수 있는 부부야말로 2중주에는 최적의 조건이겠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뿐이지 기타 애호가라면 연인이나 배우자와 같이 기타를 즐기는 게 '로망'이지 않을까. 같이 하는 게 어렵다면 상대방으로부터 최소한 잘한다는 응원이라도 받아 보고 싶을 거다. 하지만 현실에선 시끄러운 소리와 무한 반복인 삑사리에 괴로워하는 배우자의 눈치를 살살 보며 점차 멀어지다 결국 골방 연습생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역시 멋진 부부 Duo는 언제나 남의 얘기며 나의 로망인 것이다. 
 
Ida Presti와 Alexandre Lagoya의 음반을 들으면 환상적인 연주와 황홀한 음색에 감탄하게 된다. 각자가 Soloist로서도 훌륭하지만 둘이 만나 이루는 시너지는 세기의 명반이라는 성취를 남겼다. 부부 연주자가 보여주는 완벽한 호흡의 비결은 역시 '합숙 훈련'이 아닐까. 
 
유튜브 덕에 Presti-Lagoya의 조합 외에도 여러 다양한 남녀 Duo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훌륭한 연주를 보면 혹시 이들이 부부가 아닐까 더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는데, 아니나 다를까 '혹시나'가 '역시나'인 일이 많아졌다. 이러니 내가 신라시대의 '찬기파랑가'를 넘어 21세기의 '찬합숙훈련가'를 부르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앞의 글이 장황해졌지만 거두절미(는 이미 글렀다...)하고 그동안 발굴(?)한 부부 Duo의 연주를 하나씩 올려보려 한다. 아마도 원조는 Presti-Lagoya일 테니 그들의 연주를 필두로 대표적인(이라고 내 혼자 생각하는) 영상을 골라 본다. 
 
1. Ida Presti & Alexandre Lagoya 
Ida Presti가 1967년 43세의 아까운 나이에 별세했다는 얘기는 누구에게나 짠한 느낌으로 남는다. 이 부부가 남긴 음반은 내가 꼽은 명반 중의 하나인데 음색과 음악성 모두 애호가에게 훌륭한 귀감이 아닐 수 없다. 여러 명연주 중에서도 내가 최고로 생각하는 헨델의 샤콘느.  

 

https://youtu.be/sUXTlYuitdY?si=CRL2v2XyDzdnkXco

 
2. Duo Montes-Kircher
Alfonso Montes가 작곡한 Preludio de Adios(이별의 전주곡)가 우리에겐 가장 친숙하지 않나 싶다. 1955년 베네수엘라 생인 Montes와 1966년 독일 생인 Irina Kircher의 젊은 시절 영상에선 선생과 제자로 보였다. 그런데 훗날 연주하는 중주를 보면서 부부가 아니면 이런 완벽한 호흡이 가능할까 의심했다. 혹시나 해서 계속 팠는데, 아니나 다를까 후에 11살의 나이 차를 넘어 부부가 되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음... 이렇게 느긋하고 감칠맛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Albeniz의 Tango 연주!


https://youtu.be/pt6PNhpo2_o?si=0qvNEF94oBPOUdP2

 

3. Duo KM
Katrin Klingeberg와 Sebastián Montes는 독일 하노버 음대 재학 중 듀오를 결성했고 현재 각각 다른 음대의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가뜩이나 명곡이던 Piazzolla의 Oblivion이 이 부부의 연주로 거대한 날개를 달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애절한 음악이 어찌 수많은 애호가의 가슴을 저미지 않겠는가. 나 같은 방구석 연습생에게까지도 연주와 녹음의 '질곡'으로 등 떠밀었던 영상이다.


https://youtu.be/gONVtoQaovQ?si=6ry7lcdMHkZz7aEn

 

4. Duo Siqueira Lima

박규희도 작은 손으로 잘만 하는데, 이 Duo의 아내인 Cecilia Siqueira의 손까지 보고선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https://youtu.be/ToAIsGezLqc?si=QvJXNn5oiRjTU7LG

 

 
5. Duo Melis
Joaquin Rodrigo의 두 대의 기타를 위한 Madrigal 협주곡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Fandango. 단연 최고의 호흡과 연주 장면으로 꼽고 싶다. 연주도 연주지만 Fandango 리듬에 저절로 몸이 춤추는 듯한 모습에 뿅가지 않을 수 없었다. '맞아, Fandango는 저렇게 연주해야 해'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랑 말랑...


https://youtu.be/baCCPxBtTUU?si=DSwimK7X-yrZbi8Q

 

 
6. Kupinski Duo
유튜브에 많은 영상이 있는데, 꽤 긴 곡도 모두 암보하여 연주하는 걸 보면 재능도 재능이지만 그에 따른 엄청난 노력도 느껴진다.


https://youtu.be/j1Kl_ROm-DY?si=Yir5XcLKD2HbYjFc

 

 
7. Amadeus Guitar Duo
이 듀오는 대부분의 문서에 Partner라고 나와서 부부인지 아닌지 애매했다. 가열차게 더 찾아보고 나서 부부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쩐지 다른 Duo에 비해서는 각자 연주 활동의 비중이 더 크다는 느낌이다.

 

https://youtu.be/9MeNkj5csB4?si=i-pU7W2qS4TrYM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