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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꿀잠 자는 사람들

볕좋은마당 2023. 8. 9. 11:38

이런 말이 있다. "아이와 강아지는 피곤해서 잘 때 제일 행복하다."
 
100% 공감한다. 온종일 뛰고 지쳐 세상모르고 자는 얼굴은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행복 그 자체다. 강아지도 마찬가지다. 신나게 달리고 꿀잠을 자본 강아지라면 주인과 함께 어슬렁거리는 산책이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몹시 흉흉하다. 폭망한 잼버리는 말할 것도 없고 여기저기서 칼부림이 났다는 얘기에, 한창나이에 삶을 저버린 교사들의 소식... 아무튼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대혼란이다. 
 
뉴스를 보다 생각나는 장면이 있었다. 폭염과 폭우가 한반도를 괴롭히던 시기, 렌터카를 타고 이탈리아 북쪽 알프스 어느 곳의 청명한 하늘 아래를 다녔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살 떨리는 운전은 다신 없지 싶었다. 사방에 널린 해발 2,000~3,000m 산을 몇 개나 거쳤으니 조금 과장하면 백두산 서너 개는 넘은 셈이다. 글자 그대로 옆은 '천길 낭떠러지'인데 무슨 써킷 돌듯 돌진해 오는 오토바이 군단은 위협적이면서도 멋져 보였다. 그 와중에 만나는 산악자전거족을 볼 때마다 '쟤들은 대체 자전거를 타고 어디를 가는 거야'라고 지껄여댔다.
 

어느 날엔 케이블카를 타고 돌로미티 지역의 해발 2,275m인 Kronplatz라는 곳에 올랐다. 가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산악지역이라 수많은 스키 코스가 있고 여러 곳에서 올라오는 케이블카가 정상에서 모두 만나고 있었다. (이렇게 미리 탐구를 하거나 뭐라도 알아보지 않고 일단 가고 보는 방식은 항상 '선행학습'이 아니라 '후행학습'을 하는 게 특징이다.) 산 아래의 승차장을 찾아 케이블카를 기다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캐빈 하나는 빨간 색, 다음엔 파란색이 번갈아 오는데, 사람용과 자전거(휴대한 사람)용으로 나눠진 거다. 정상에 가기 전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내에게 계속 얘기했다. '케이블카는 사람들 타라고 운영하는 거 아닌가? 근데 자전거 전용칸을 저렇게 대놓고? 아니, 자전거를 얼마나 탄다고 무려 절반을 자전거 칸으로... 서너 칸에 하나도 아니고.' 자세히 보니 사진처럼 사람이 앉는 의자 한쪽은 접고 바닥엔 자전거 거치대를 설치했다. 두세 사람과 자전거 두세 대가 들어가면 괜찮을 구조였다.   
 
아무튼, 정상에 올랐다.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광활한 하늘과 거대한 바위산들을 보고 계속 탄성을 뱉은 기억만 난다. 각 지역에서 올라온 케이블카 정류장과 식당, 카페, 이정표, 아이들의 놀이기구, 선물 가게 등은 예측 가능한, 어디서나 볼 만한 시설이므로 큰 감흥을 주진 않는다.
 
그런데, 역시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여러 생각이 스치며 폰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한 장면이 있었다.

 

아까 본 자전거용 캐빈으로 올라왔을 사람들이 2,000m가 넘는 정상에서 출발하여 신나게, 힘차게, 담대하게 산 아래로 질주하는 모습이 여러 곳에서 보였다. 얼마나 재미있고 짜릿할까, 그저 부럽기만 했는데 한편으론 대부분이 10대~20대 청소년들이라는 사실이 더 부러웠다. 우리라고 이런 산악 스포츠를 하는 청소년이 없을까만은, 이건 뭐... 스케일이 다르다.
 

우리나라의 자연 조건이 빈약해서 기회가 없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이런 곳이 있다면 과연 아이들이 이런 '과격하고, 위험하고, 땀나고, 뽀대나지만 시간이 드는' 스포츠를 온전히 즐길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수업하고 밤엔 야간자습하다가 방학에도 학원에서 공부하는 게 당연한 나라에서 산악자전거를 타러, 트레킹하러 산에 간다면 순순히 보내 줄 부모가 얼마나 될까.
 
무엇보다 놀라운 건 케이블카에 자전거를 싣고 온 사람들이 아니다. 영상의 후반부에 보이듯 그 높은 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는 (미친) 놈들... 전문 용어로 '도른 자'들이 바로 저들을 가리키는 것인가. 차를 운전하며 '쟤들은 대체 자전거를 타고 어디를 가는 거야'라고 한 말의 답이 보이는 거다. 남자 여자가 따로 없었다. 그냥 미련하고 무식하게, 얼마나 더 가야 정상인지 알기나 하는지, 꾸역꾸역 페달을 밟는 '건각(健脚)'들을 차창 밖으로 수없이 지나쳤다. 부러운 나머지 '이 나라의 일부에 불과한 사람들일 거야.'라고 뇌까렸지만 나라 전체가 정말 건강할 것 같다는 환각은 계속되었다.
 
좋은 공기 마시며 저렇게 빡세게 자전거를 타면 잠이 얼마나 달콤할까. 종일 뛰어 논 아이나 강아지보다도 더 행복하게 잘 사람들이 거기 다 모여 있었다. 우리나라 아이들도 어른들도 그렇게 잘 자면 좋겠다. 그러면 세상이 덜 흉흉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조금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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