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7일 일요일 오후, 파리 샤를드골 공항 스타벅스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시청용으로 가져온 패드를 이렇게 사용할 줄은… ) 4월 8일(월) 오후에 서울에 도착하니까 이틀 후 제22대 총선에 투표를 할 수 있게 됐다. 3월 13일에 서울을 떠났으니 이번엔 27일 만에 집에 가는 거다. 가는 표만 사서 출국, 여기저기 떠돌다 마침 선거일 전의 비행기표를 구해서 다행이다. 어디 어디서 한 달 살기고 뭐고 집에 갈 생각에 오히려 설레고 있으니... 언제나 집이 쵝오!
일정이 맞은 덕분에 투표를 할 수 있게 된 건 좋은 일이다. 하마터면 태어나서 한번도 거르지 않은 '한 표 행사'에 금이 갈 뻔했다. 오늘 아침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가 든 사진을 보니 더욱 동기부여가 된다. 1987년 최루탄에 맞아 머리에 피를 흘리는 연대생 이한열의 모습과 함께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어떻게 얻은 투표용지인데… 잊지 맙시다.'
정말 그렇다. 태어날 때부터 최루탄 냄새가 없고 대통령을 직접 뽑는 나라의 국민인 세대는 그 작은 권리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했던 시대를 실감하기 힘들 것이다. 어느 나라가 됐든 이 시각 일말의 평안과 자유로움을 누리는 국민이라면 엄혹한 시대에 피땀을 아끼지 않은 그들의 선열을 칭송해야 한다. 따끈한 밥 한 공기를 보며 여름 뙤약볕 아래 땀 흘린 농부에게 감사함을 느끼듯 가끔은 그 알량한(!) 한 표 때문에 투옥과 고문을 불사한 사람들에게도 빚졌다는 생각을 놓아선 안 된다. 평소엔 까맣게 잊더라도 투표하는 순간만큼은 말이다.
투표를 안 하면 벌금을 무는 나라도 있단다. 여기에 대해선 각자의 주장에 다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이를테면, 기권을 하는 것도 의사표현의 한 방법이라 하면 할 말은 없다. 모든 후보가 다 나쁜 인간인데 그럼 어떡하냐는 호소도 들어봤다. 어떤 세력은 선거철만 되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더 많은 사람이 정치를 혐오하도록 애쓰고, 종당엔 정치를 외면한 국민이 '개 돼지'가 되길 바란다. 많이 회자된 플라톤의 말은 시대를 초월하는 진리가 되었다. One of the penalties for refusing to participate in politics is that you end up being governed by your inferiors. - 정치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 대한 벌은 결국 열등한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쁜 정치인을 욕할 시간에 최선이 아니면 차악이라도 뽑는다는 각오로 투표할 일이다.
그깟 투표가 뭐라고 장황한 글까지 쓰냐고 하겠지만, 사실은 젊은 시절 투표에 대한 (트라우마까진 아닐지라도) 쓰린 기억이 있어서다. 1985년 2월의 제12대 총선은 태어나서 경험하는 첫 투표였다. 당시엔 만 20세부터 선거권이 있어서 거의 20대 중반에, 그것도 군 복무 중에 영내 사전 투표를 했다.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이 저지른 일은 생생하게 머리에 남아 기억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이제부터 하는 얘기는 오래전 MBC TV에서 방영했던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개인 버전이 되겠다.
그때는 상병 말이었을 것이다. 카투사가 있는 미군 부대엔 혹시 있을 카투사에 대한 차별이나 불이익 등을 견제하고 지속적인 정신 교육을 위한 목적으로 가능한 한 미군 지휘관과 동급의 한국군 연락장교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속한 중대엔 미군 중대장에 대응한 L대위가 상주했고, 대대엔 마찬가지로 H소령이 있었다. 달리 하는 일이 없었던 그들은 카투사들의 권익을 보호(는 개뿔...)하고 한국군으로서의 정체성(?)을 주입하는 정신 교육을 했다. 한 달에 한 번은 H소령이 우리를 한 자리에 모아 놓고 군인 정신이니 애국심이니 하는 뻔한 주제로 강연을 했다. 그 하나마나한 말 중에서도 잊히지 않는 게 있다. '군인 정신이란 불의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를 뜻한다.'
총선 한 달 전쯤 전두환의 폭정에 반항하는 민주 인사들이 신민당을 창당했고, 내란 음모의 누명을 쓰고 복역하다 미국으로 망명한 김대중이 선거 며칠 전 귀국하는 초대형 사건이 있었다.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에 나온 장면이야말로 초현실이었다. 전두환의 암살 시도로부터 김대중을 보호하고자 미국 의원들과 브루스 커밍스 교수 같은 요인들이 귀국 비행기를 같이 타고 온 일이다. 1983년 필리핀의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 2세가 귀국길에 마닐라 공항에서 암살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여파로 이런 기이한 풍경이 우리나라에서 연출되었던 것이다.
정국은 요동쳤다. 야당의 돌풍이 부는 게 느껴졌다. 인터넷도 없었던 시절, 그것도 군대에 있던 내가 그걸 어떻게 느낄 수 있었냐고? 총선이 다가오면서 위에서 지침이 내려왔다. '선거 운동 기간 모든 병사들의 외출 외박 금지.' 의도는 뻔했다. 감히 군바리들이 어디 겁도 없이 선거 유세를 보러 다녀! 뭐 이런 것 아니었을까. 실제로 내가 근무했던 중대 본부에서 어떤 선임의 징계 건을 처리한 일도 있었다. 성씨가 특이한 '기'여서 지금도 이름까지 다 기억한다. 야당 후보의 유세 현장에 가서 으쌰으쌰 하던 모습이 정보기관의 카메라에 포착된 모양이었다. 평소 과묵했던 그 선임에게선 뭔가 숨은 포스 같은 게 풍겼는데, 입대 전 독재 타도 시위로 좀 '날렸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입대 전에도 요주의 인물이었으니 군 복무 중에도 딱 걸린 거였다.
아무튼 밖은 소란스러웠어도 군대는 평온했다. 그런데 군인 정신을 운운하던 H소령이 돌변하는 일이 벌어졌다. 판세가 불리하게 돌아갔는지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연락 장교들이 서울로 불려갔다 왔고, 점차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밤, H소령은 우리를 불러 모아놓고 일장 훈시를 시작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강대국 틈에서 침략을 받으며 살았고… 어쩌구 저쩌구… 우리 국토는 좁은 데다 지하자원도 없고… 내가 예전에 미국에 가봤는데,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도 농경지가 끝이 안 보이는 거야. 그래서 교회 다니는 내가 '하나님 개XX'라고 욕을 했다. 오죽하면 그랬겠냐. 그래서 자원도 농토도 가진 것도 없는 우리나라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한 거야. 무슨 말인지 다들 알아들었지?"
이런 노골적이고 황당한 말에 금세 불만 섞인 웅성거림이 있었고 어떤 병사가 용기를 내어 항의했다. "H소령님, 요전 정신 교육에서 저희에게 군인 정신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땐 불의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지금 저희에게 어느 당을 찍으라고 하시는 건 선거 개입 아닙니까?" H소령은 사실 죄가 없었다, 엄혹한 시기에 직업 군인이 되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쿠데타 일당에게 휘둘리던 것일 뿐. 한낱 사병의 맹랑한 항의에 움찔했지만 그 역시 누구도 안전하지 못한 시대를 살아내야 했기에 이 상황을 수습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결국 이런 부탁인지 강요인지 명령인지 모를 아리송함으로 교육을 마무리한 게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이놈들아, 군인이 군인을 안 도우면 누가 군인을 도와주나?"
선거일이 가까워 오면서 전두환의 민정당 승리를 위한 그들의 '아이디어'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나름대로 고육지책이었겠다. 이런 논리다. '어느 당을 찍든지 관계없다. 자유 투표? 보장해 준다니까! 그런데 너희들은 군인 아니냐. 부재자 투표지만 군대에선 절대로 기권표나 무효표가 나오면 안 된다. 군인 정신은 그런 거 아니냐? 100% 투표에 100% 유효표가 나와야 한다. 그러므로 그걸 확인하겠다. 기표하는 것까진 보겠지만 어느 당을 찍든지 그건 자유다.'
뭐 이런 게 있나. 누굴 찍는지 대놓고 보여달라는 말이다. 학교에서 선거의 4원칙으로 외운 보통선거, 평등선거, 직접선거, 비밀선거 중 비밀선거가 군부에 의해 무너질 예정이었다. 반발도 소용없었다. 그렇게 하겠다는데 일개 병사들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그나마 한국군 병영보다 좀 더 자유롭고 지휘체계가 애매한 곳이라 이 정도 항의라도 했지 한국군 부대에서 복무한 친구들의 사정은 더 심각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큰 정책(?)의 방향이 정해지자 각 중대 별로 각개격파가 시작되었다. 내가 근무하던 중대본부의 병사들은 하나 둘 연락장교인 L대위 방에 불려들어가 면담을 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그가 다짜고짜 던졌다. "야, 김상병! 너는 반골이라며?" 이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아, 이렇게 선빵을 날리다니…’라고 생각하며 받아쳤다. "제가요?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세요? 저는 반골 아닙니다. 그냥 비밀투표를 못 한다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죠." L대위 역시 잘못이 없다. 심성이 악하지 않은 그에게도 다른 선택이 없다는 게 측은했다.
부재자 투표 당일, 우린 각자에게 주어진 투표용지를 펴고 L대위가 등 뒤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도장을 찍었다. 그는 우리에겐 자유투표가 보장된 것이며 단지 무효표가 나오지 않도록 보는 것뿐이라고 연신 지껄였다. 난 보란 듯이 야당을 찍었다. 당시의 분위기에 겁이 안 났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내 생각을 다 드러내는 투표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L대위는 체념하듯 말했다. "야, 인마. 너 앞으로 재미없을 줄 알아."
한국말은 정말 재미있다. '재미 없다'는 말이 때로는 폭력의 언어가 된다는 걸 외국인이 이해할 수 있을까. 어쨌든 선거의 광풍은 이렇게 지나갔고, 5개월 뒤 제대할 때까지 나에게 '재미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좋게 보면 선거 후 혹여라도 있었을 법한 뒤끝이 없었던 거고, 나쁘게 보면 그 난리가 다 소용없었던 거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우리가 어떤 당을 찍었든 투표함이 바뀌어 서울로 올라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굳이 '재미없는' 일을 만드느라 힘쓸 필요도 없었던 건 아닐까.
이런 군 부재자 부정 투표는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관행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1992년에 가서야 이지문 중위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물론 당국은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했고, 그래서 진실을 말한 사람이 오히려 집요한 박해와 불이익을 당한 것으로 기억한다. 늘 그런 식이지 않았나. 일단 메시지를 부인한 다음에 메신저를 공격하는 파렴치 또는 안쓰러움... 그 뉴스를 접하며 여러 군상의 애처로운 모습이 떠올랐다. 때로는 영달을 위해 때로는 생계를 위해 뻔한 사실을 외면하는 권력은 측은하기까지 했다. 이 사건은 인터넷에 '군 부재자 투표 부정 폭로 사건'으로 상세하게 나와 있다. '이지문'만 넣어 검색해도 이 사건으로 연결될 정도의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이렇게 나의 생애 첫 투표는 쓰린 맛으로 남았다. 세월이 갔어도 죗값을 치렀어야 할 세력이 여전히 호의호식하는 모습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호의호식을 넘어 자신들의 대들보 같은 부정엔 눈 감고 힘없는 국민의 털끝만한 잘못엔 추상같은 법을 들이대기 일쑤다. 그런 걸 볼 때마다 수십 년 전의 속쓰림이 치오른다. 입만 열면 자유를 들먹이고 이념과 가치를 운운하는 자들에게 묻고 싶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랍시고 빛나는 시기를 기꺼이 바친 젊음들에게 했던 짓은 도대체 어떤 이념과 가치를 지켜내기 위함이었는가.
내 투표 용지를 뒤에서 봤던 L대위, 군인이 군인을 밀어줘야 한다던 H소령은 이제 60대 후반~70대 초반의 할아버지가 되어 있겠다. 그들도 남모르는 고뇌를 겪었다면 결국 시대를 잘못 만난 탓이었다고 위로하고 싶다. 우연하게라도 소식을 들을 확률은 희박하지만, 부디 맥락도 없이 태극기와 남의 나라 국기를 같이 흔드는 '아스팔트 보수'가 되어있지는 않기를... 박정희 때 배운 국사를 넘어 그 뒤의 책도 좀 보고 새로운 지식과 지혜를 쌓았기를 바란다. 나이 들어서까지 달랑 독재자 치하에서 닦은 거울에만 세상을 비춰본다면 그게 바로 꼴통으로 거듭나는 지름길 아니겠는가.
첫사랑은 아련한 추억이고 첫 출근은 긴장과 설렘이다. 누가 뭐래도 첫 투표는 뿌듯함으로 남아야 한다. 첫 투표를 망친 나는 이후의 모든 투표에 '개근'함으로써 상실을 보상해 왔던 것 같다. 땅덩어리 큰 나라에선 한 표를 행사하러 기꺼이 비행기를 타는 교민들도 있다는데, 어차피 집에 가야 하는 내가 선거일에 맞춰 비행기에 오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거짓과 광기의 시대에 부조리 타파를 외치며 자신을 던지는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작은 손길… 그게 바로 나의 한 표가 아니겠는가. 얇지만 강력한 투표용지로 저들의 싸다구를!
자~ 투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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