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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 모이 주기

볕좋은마당 2022. 7. 16. 00:27

작년(2021년)에 우리나라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되었는데, 이 기구가 만들어진 1964년 이후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위상이 바뀐 일은 처음이라고 한다. 경제 규모를 비롯한 여러 지표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이 있었겠지만 나는 우리가 선진국이 되었다는 증거를 다른 시각에서도 발견한다. 

 

오래 전인 1990년대 중반, 방학 중 잠시 미국 서부 도시에 머문 적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은 것 중 하나는 (생김새가 우리나라 참새와 별다르지 않은) 참새들이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던 장면이다. 파라솔 밑 의자에 앉은 나로부터 1~2미터 떨어져서 총총 뛰어다니는 모습이 당시에는 꽤 신기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재미로 했든 구워 먹으려 했든 집 주변에서 참새를 잡는 일이 흔했고, 경계심 많은 녀석들이 그렇게 가까이서 노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참새란 민가에 살면서도 동시에 사람을 무서워하도록 오랜 세월 진화해 온 동물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집에 있던 산탄 총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참새를 잡기 시작한 나의 눈에 미국 참새는 아직 뜨거운 맛(!)을 보지 못한, 세상 물정 모르는 놈들이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내가 어린 시절 참새를 잡아 구워 먹었다는 '라떼는 ~' 류의 얘기에 사람들은 경악하거나, 호기심을 보이거나, 반신반의하였다. 그런데 어쩌랴, 그 당시 그 장소에선 그저 겨울철 '별미'를 즐기는 일에 불과했던 건데. 태어난 곳은 병원, 받은 사람은 의사, 자란 곳은 아파트, 놀던 곳은 신소재 바닥의 놀이터였던 젊은 세대에겐 태어난 곳이 집, 받은 사람은 산파, 자란 곳이 흙마당 시골집, 놀던 곳이 학교 옆 개울과 비포장 도로였던 나의 얘기는 어차피 이질적일 수밖에 없다.

 

수업 중 지루해질 만하면 참새 잡아 구워 먹은 얘기를 해주곤 했다. 어디서도 못 들어본 뜻밖의 고릿적 경험담에 꾸벅꾸벅 졸던 녀석들이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는 순기능도 있었지만 일부 아이들이 나를 미개한 인간 보듯 하는 역기능 또한 받아들여야 했다. 심지어 어린 시절 집에서 토끼며 닭이며 칠면조며 기르다가 결국엔 먹기 위해 내 손으로 죽여야만 했던 대목에 다다르면 어느샌가 교실에서 나만 야만인이 되고 말았다. 

 

그런 '부당한' 시선을 억울하게 당하고만 있을소냐. 결국 반격을 시작했다. 너희들이 매일이라도 좋아라 먹는 닭의 머리는 원래부터 없던 거냐고. 당장 오늘 밤에 배달된 치킨을 열었는데 머리가 떡하니 붙어있다면 인상 쓰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그놈은 태어나서 불과 한 달 남짓 산 것들인데 닭의 자연 수명을 알고는 있냐고. 닭이 어떻게 비인도적으로 사육되고 얼마나 잔인하게 도살되는지 본 적은 있냐고. 산란계 양계장에서 부화했으나 쓸모없는 수평아리들은 어떻게 '처리'되는지 생각해 봤냐고. 유튜브에 모든 영상이 널렸으니 한번 찾아보라고. 덧붙여, 유튜브에서 'Animal Cruelty'를 검색하여 잔인하게 사육되고 도축되는 동물의 영상을 본다면 Vegan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을 좀 더 잘 이해할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얘기가 한참 샜는데, 어쨌든 작금의 우리나라에서 참새를 잡아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무리 별미라도 굳이 그런 수고를 하느니 동네 마트에 널린 고기를 사 먹으면 될 일 아닌가. 추측컨대, 우리나라 참새들도 미국 참새들의 길 - 먹을 게 넘치는 땅에서 잡힐 걱정 없이 오랜 세월을 살며 사람에 대한 경계가 희미해진 - 을 따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내가 총으로 참새를 잡아 본 마지막 기억이 1990년대 중후반이니까 최소 20년 넘게 우리나라 참새들은 조상들이 시달렸던 생명의 위협에서 해방된 거다. 적어도 20 세대 이상 내려온 그들의 유전자 속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난 게 아닐까.

 

우리나라는 이런 관점으로도 선진국이 된 게 분명하다, 참새를 잡아 이렇게 저렇게 손질하여 구워 먹은 얘기를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재밌다며 들을 때는 언제고 종당엔 나를 미개인으로 몰아가는 형국이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손댄 적이 없다는 사실을 어제도 먹은 고기의 불쌍한 과거(?)에 대한 죄책감을 면하는 논리로 이용하려고 한다. 비록 어린 시절 참새구이를 먹은 사람이지만 대량으로 소비하는 육류를 위해 현시대가 동물의 생명에 어떤 야만을 가하는지 남들보다 눈곱만큼의 관심은 더 기울여 왔다고 생각한다. 지구 온난화를 걱정한다면서 매일 고기를 먹는 자들이여, 나에게 돌을 던지지 말라. 흠흠. 

 

새끼를 먹여야 하는 모성과 아침의 배고픔 탓인지 아직 친해지지도 않은 얼굴임에도 막 달려드는 참새들이다. 이대로 반복 학습이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손과 팔에 막 올라와서 먹을 것을 달라고 조를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인가에서 봤는데, 매일 먹을 것을 던져 주던 인사동 화가 아저씨의 팔과 손에 참새들이 달라붙는 게 화제였다. 이제 우리도 선진국이 되었으니 그 정도쯤은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게 될지도...

 

 

위 영상을 찍고 나서 얼마 후, 결국 이놈들은 경쟁하듯 손바닥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꾸준하고 집요한 세뇌(?)는 참새들에게도 통한다는 사실!

https://youtu.be/hETPc4vHd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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