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o한.../타인의 일상

# 습관의 힘

볕좋은마당 2023. 7. 30. 17:30

스으으~, 흡!
 
매일 했던 일이라면 또 모르겠다. 2년에 한 번이나 할까 하는 동작도 내 몸을 길들이다니... 제목을 '습관의 무서움'이라고 쓰려다 그러면 더 무서운 쪽으로 갈까 봐 '습관의 힘'으로 했다.
 

여러 공항을 거치다 보니 어느 공항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늘 하듯 가방이며 폰이며 잡동사니를 사각 바구니에 던지고 X-Ray 검색대의 진행 방향으로 나갔다. 앞에는 둥근기둥 모양의 전신 스캐너(Full-body Scanner)가 있었다. 한 사람씩 안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공항에 따라선 그냥 생략하고 나가게 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비행기 폭파 시도가 잦아지자 금속 외 다른 물체도 감지할 수 있는 이런 모양의 스캐너를 공항들이 설치했다고 한다. 원치 않게 알몸이 드러난다는 반발도 있었지만 안전이 우선이라는 주장 앞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생명의 위협에서 해방시켜 준다는데 찜찜한 느낌은 개인이 감수해야지 어쩌겠는가.
 
일반인이 이 기계를 일상에서 체험할 일은 거의 없지만 어쨌든 대단한 성능을 갖춘 건 인정해야 했다. 금속성 물질만 아니면 괜찮을 것이란 생각에 바지 주머니에 지폐를 넣은 채 들어갔다가 딱 걸린 거다. 돈뭉치도 아니고 그냥 만원 권 네댓 장인데 그걸 탐지하다니… 무슨 이런 시답잖은 것까지 잡아내나 했지만 그래도 훌륭한 놈인 건 분명했다.
 

스캐너에 들어가는 순간 지은 죄가 없어도 은근히 눈치를 보며 쫄아드는 느낌이었다. 바닥의 발 그림에 내 발을 맞춰 올리고 앞에 붙은 그림처럼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외부의 투명 원통이 내 둘레를 슝슝~ 윙윙~ 돌고 나면 순식간에 검색이 끝났다.
 
어이없는 일은 원통 안에서 일어났다. 무의식적으로 추측이란 게 작동한 거다. '그런데 이건 X-Ray로 검사하는 거잖아.' 투명 원통이 도는 순간 나도 모르게 두 팔을 위로 치켜들고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스으으~!
 
이때다. 드디어 허파에 공기가 꽉 찼음을 느끼는 찰나 숨을 참았다.
 
흡!
 
금세 스캔이 끝나고 원통 밖으로 나오며 머릿속을 스친 말... '엥, 뭐지?'
 
정기 건강검진 때마다 X-Ray 장비에 가슴을 대고 했던 동작이었던 거다. 이런, 젠장... 누가 눈치라도 챘을까 짐짓 자연스러운 척 빠져나왔다. 폐 검진하는 것도 아닌데 숨을 가득 들이마신 채 꾹  참았다는 얘기를 들은 아내의 조롱에 맞서 '아, 내가 모범생이잖아. X-Ray 앞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게 버릇이 돼서 그랬던 거지.'를 반복하며 대꾸했다.
 
오랜 여정은 독일에서 끝났다. Frankfurt 공항에서 귀국 비행기를 타러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거기서 또 전신 스캐너를 만난 거다. '에에, 이번엔 좌~여~언스럽게 가만히 있어야지.'를 뇌까리며 원통 안으로 들어갔다. 정신을 가다듬고 태연한 척하는데, 간질거리는 재채기를 참느라 헐떡이듯, 본능이 된 습관은 치올라오고 이성이 된 부끄러움은 내리누르는, 어색한 뭔가가 내 안에서 쟁투하고 있었다.
 
스으...스으... 윽... (꿀럭)... 헉!
 
정말이지 습관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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