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기타에 갓 입문했던 애송이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의 연주를 따라 흥얼거리지 않은 날이 없었을 것이다. 언제나 감탄의 대상이었고 추종의 모델이었던, 나의 우상이었던 Bream이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가 광복절이자 토요일인 오늘 아침에 나왔다.
젊은 시절 얄팍한 주머니 사정에도 꼬박꼬박 사서 들은 그의 음반은 날새는 줄 모르고 떠들며 마시던 막걸리의 안주가 돼 주었다. 그가 스페인 각지를 다니며 설명과 함께 연주하는 4편짜리 스페인기타 비디오를 구해서 돌려보기도 했다. 그땐 세상이 참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웬만한 영상을 모두 손바닥 위에서 볼 수 있게 된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도 불편한 시절의 추억이다.
그래미상을 네 번이나 받을 정도의 명연주 명반을 냈다는 사실보다 먼 나라에서 마냥 기타 연습을 하는 한 개인의 감성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그의 연주와 해석은 감상 후엔 꼭 기타를 잡도록 유혹하는 힘이 있다. 물론 기본기를 멀리하고 그저 스타일을 흉내 내보겠다고 덤비는 나 같은 애송이에겐 좌절과 포기만을 돌려주는 얄미운 존재이기도 했다.
1987년 봄 스페인의 거장 Andres Segovia가 타계했을 때 나는 지방 출신의 가진 것 없는 자취생이었다. 카세트 테이프 몇 개와 혹시 나중에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사놓은 LP 몇 장이 그나마 있던 음원의 전부였다. 점차 CD의 세상이 되었고 그 뒤 전집을 포함하여 Segovia의 앨범도 꽤 모아서 들었는데, 아무래도 1893년 생이었던 그와는 동시대인이라는 느낌이 덜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Bream은 좀 달랐다. 비록 또래는 아니어도 삶의 상당 시기를 공유했으니 Segovia보다는 가깝게 느껴지는 게 당연할 테다. 군 생활 중이던 1984년에 우연히 영자신문에서 그의 자동차 사고 기사를 보고 오려서 '여태껏' 보관했다. (이렇게 부고를 보고 나서야 스캔을 할 줄이야!) 신체의 일부를 떼어 오른팔에 이식을 해야 할 정도의 대형 사고를 겪어서 연주가로서의 생명이 불확실했는데, 그 뒤 초인적인 노력으로 테크닉을 회복하여 다시 무대에 서게 된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혹자는 사고 뒤에 더 음악성이 좋아졌다고 평했다는데 어쨌든 그런 시련 뒤에도 가히 세기의 명반으로 꼽을 만한 음반을 냈고, 그중에는 내가 수백 번도 더 들었을 명연주들이 포함되어 있다. 간혹 어떤 곡들은 Bream의 연주를 듣는 게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일단 그의 손에 이끌려 천국의 안갯속을 다니다 깨어나면 그 곡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되는 것으로 ‘세뇌’되거나 ‘착각’에 빠져버린다. 그 뒤에 듣는 다른 연주자의 연주는 밋밋한 나머지 졸음을 유발하거나 심지어 나사가 몇 개 빠진 ‘맹탕’으로 느껴지는, 좀 심각한 부작용을 겪기도 했다. (내가 알기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내한 공연을 가서 보았는데 물론 대단한 연주였지만 아무래도 전성기 때 왔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나마 Segovia는 일본까지만 왔고 우리나라엔 온 적도 없다!)
한창때 본인의 자동차 사고로 큰 어려움을 겪었고 노년에는 아들이 (아마도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자동차 사고를 내서 경제적으로 어렵게 되었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진위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여러 훌륭한 영상을 남겼고 살아가는 내내 모든 기타 애호가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하고 이렇게 세상과 이별을 했다.
나의 우상 Julian Bream의 평화로운 영면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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