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Narciso Yepes의 테입에서 이 곡을 처음 듣고는 신기하고 의아했다. 아무리 들어봐도 혼자 하는 것 같지 않은 거다. 그런데 독주라니... 결국 나중에 악보를 보고서야 오른손의 특이한 주법으로 인해 그렇게 들렸다는 것을 알고 의문은 풀렸다. 하지만 익숙해지기까지는 많이 헷갈렸다.
특히 이 곡은 그동안 여러 무대의 연주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앞으로도 잊지 못할 곡이기도 하다. 좀 황당한 일화가 있는...
군 제대 후 복학하여 3학년 때였나 보다. 긴 시간 나름 열심히 준비하여 동아리 정기연주회 무대에 섰다. 첫 곡인 G. Sanz의 Pavana로 손을 풀고, 이어서 J.S. Bach의 Fuga BWV 1001을 하고, 마지막에 이 곡을 하게 되어 있었다.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싶더니, 아뿔싸, Fuga 중간쯤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대고 객석이고 불이 다 꺼져 버린 거다. (나중에 들었는데, 그 시간에 그 일대가 모두 정전이 되었단다.) 한참 하다가 멈출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암흑 속에서 내 몸에 붙은 손가락도 볼 수 없는 상황이고... 속으로는 계속 '젠장! 뭐야. 대체 무슨 일이야?'를 뇌까리고 있었다. 할 수 있나? 계속 쳤다. 손을 보면서 해도 어려운 Fuga를 느낌으로만 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막 실수가 나왔다. 영문도 모르는 채 겨우 Fuga를 끝냈는데, 잠시 무대 뒤에서 웅성임이 있고 난 뒤 한 후배가 더듬거리면서 나에게 왔다. "형, 정전이라네요. 어떻게 하실래요? 계속 진행해요?" 이 말을 들었을 때의 황당함과 낭패감이란! (지금도 생생하다 ㅜ.ㅜ) 그렇다고 한 곡 남겨 두고 전기가 들어오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는 생각에 그냥 마저 하겠다고 했고, 후배는 객석을 향해 이 말을 전했다. 순간 우레와 같은 박수가... 결국 칠흑 속에서 멍하니 앞을 응시하며 이 곡을 연주했다. 어차피 왼손은 보이지도 않으니까... 마음속에선 '이런 젠장~'이 계속 울리고 있었고, 어쨌거나 짧고 강렬한 곡을 가장 극적인 상황에서 마쳤다. 이어서 터져 나온 청중들의 박수와 환호성!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갈채였다. 이 황당한 사건(?)은 그 뒤 계속 후배들에게 회자되었고, 전설처럼 남았다. 그 후 얼마간은 다른 연주회를 보러 가서 객석에 앉아 있어도 알아보고 인사하는 사람이 간혹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젠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겠지 했는데, 나만의 생각이었다. 어떤 기타 카페에 가입했더니 20년도 한참 더 지난 이 일을 기억하며 나에게 말을 거는 이도 있었다는... 아무튼, 고의는 아니었겠지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준 한국전력공사에 이 자리를 빌어 감사! ㅋ
<Danza No.1> by Antonio Ruiz-Pipo (Recorded on November 2, 2013)
사용악기: (그 때 사용했던) 원음 50호(1985년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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