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가을~1983년 봄께로 기억한다. 밤에 우연히 FM Radio에서 김남조의 <상사>를 여성 진행자가 낭독하는 것을 들었다. 애절하고도 마음 깊은 곳을 찔러대는 듯한 싯구에 한 마디로 '뿅' 간 거다. 그리고는 1983년 봄 한글 궁체 흘림으로 열심히 써서 전시회에 냈다.
그 뒤 얼마 안 있어 군대에 가게 되었고, 전시회는 입대 직후에 열렸으니까 난 작품이 표구되어 전시회에 걸린 것을 구경하지 못했다. 나중에 휴가 나와서 들었는데, 내가 쓴 것이 중앙도서관 여학생 휴게실에 걸려 있더란다. 거긴 금남(禁男)의 구역이니 그래서 또 난 내 작품을 볼 수 없었다. 지금처럼 누구나 할 것 없이 디카를 갖고 있다면 사진으로나마 구경했겠지만... 어쨌든 그 땐 그랬다.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내가 쓴 것이 학교 어디엔가 걸려 있다는 사실만으로 흐뭇하긴 했다. 그런데 또 한참 뒤에 들은 소식은 그게 없어졌다는 얘기였다. 누군가 슬쩍 훔쳐갔을까? 그렇다면 도난은 도난인데 도대체 누가 내 글씨에 욕심을 냈을까... 이런 쓸데 없는 상상을 하면 재미있는 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작품을 영영 볼 수 없게 되어서 또한 아쉽기 짝이 없다. (범인이 누군지 지금이라도 자수하기 바란다. 공소시효는 지났으니까... ㅋㅋ 그것도 싫으면 모쪼록 잘 갖고있기를... 난 애착을 갖고 꽤 열심히 쓴 거니까... ㅡ.ㅡ;;)
그 뒤로 한참의 시간이 더 갔다. 그 땐 라디오에서 들었던 시를 찾아 서점을 뒤져야 김남조 시집을 겨우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세상이 격변(!)하여 이젠 인터넷에서 기억에 나는 글자들을 넣어 검색하니 허무하게도(?) 바로 뜬다. 마우스로 주욱 긁어 복사해 화면으로 보면서 전(轉)과 절(折)의 기분을 적당히 버무린, 엄격하고 유려하지 않은 궁체랍시고 끄적여 보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읽어봐도 애닯고 간절한 표현들은 역시 가슴을 저리게 한다. 사람의 나이는 들어가도 옛 감정은 그대로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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