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방/나의 연주

Prelude in E for Guitar & Harpsichord by M.M. Ponce

볕좋은마당 2021. 9. 11. 11:54

<Prelude in E> by Manuel Maria Ponce                                                       (Recorded on September 8, 2021)

 

<작은 별(Estrellita)>의 작곡가로 널리 알려진 멕시코의 Manuel Maria Ponce(1882-1948)는 원래 오르간 연주자였다고 한다. Andrés Segovia를 만나고 난 뒤 여러 멕시코 민요들을 기타 곡으로 편곡했을 뿐 아니라 기타를 위한 작품을 여럿 남김으로써 기타 음악의 레퍼토리를 더욱 풍성하게 하였다.

 

1923Segovia와의 첫 만남 이후 1948년 별세할 때까지 Ponce가 작곡한 기타 곡은 소나타 6, 변주곡 3, 모음곡 2, 전주곡 24, 협주곡 하나와 다른 독주곡들에 걸쳐있다. Segovia는 기타 레퍼토리의 확장을 꾀하려고 기타리스트가 아닌 작곡자들을 찾아 나섰고, 마침 멕시코에서의 첫 연주회에 Ponce가 왔던 것이다. 당시 음악 평론을 하던 Ponce는 기사를 쓰기 위해 Segovia의 공연을 찾았고, 둘의 만남은 훗날 기타의 역사에 남을 사건이 된다.

 

PonceSegovia의 연주에서 기타의 표현력에 감동을 받아 연주를 끝낸 Segovia를 찾았다. Segovia는 Ponce가 멕시코에서 가장 훌륭한 작곡가라는 것을 알고 기타를 위한 곡을 써 주기를 청했고, 이후 두 거장의 협업으로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많은 걸작들이 탄생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편지들 중 Ponce가 Segovia에게 보낸 것들은 스페인 내전 때 소실되었고 Segovia가 Ponce에게 보낸 것만이 남았고, 이 편지들을 통해 위대한 작품들의 기원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전주곡(Prelude or Preludio)은 1931년엔 기타 솔로로 작곡되었고, 1936년에 Harpsichord와의 중주 버전으로 만들어졌다. 이 중주 버전은 당시 Cataluña의 피아니스트인 Paquita Madriguera와 결혼하는 Segovia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Segovia는 첫 결혼을 1918Adelaida Portillo, 두 번째 결혼을 1935Paquita Madriguera, 세 번째 결혼을 1962Emilia Magdelana Corral Sancho와 하였다. 그 와중에 1944년부터 수십 년 간 브라질의 가수 겸 기타리스트인 Olga Praguer Coelho와의 '관계'를 지속했다고도 한다. 세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1970년에 아들 Carlos Andrés Segovia를 보았다. 그러니Segovia는 우리 나이로 대략 70세에 세 번째 결혼을 해서 무려’ 78세에 2세를 낳은 거다! 하여튼 대~단한 Segovia옹이다. 그러니 90이 넘어서도 무대에서 연주를...)

 

Segovia는 이 곡을 바로크 시대의 류트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Sylvius Weiss곡이라고 하며 종종 연주하였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어떤 음반에는 Weiss 작곡으로 버젓이적혀 있기도 한데 이게 사람들을 깜빡 속이려는 의도였다는 게 재미있는 사실이다.

 

이런 가짜 작곡자건과 관련해선 이야기가 꽤 있는데, 여러 인터넷 문서와 논문에서 읽은 것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당시 기타의 레퍼토리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Segovia는 자신의 연주회에서 다양한 시대의 곡들로 구색을 맞추고 싶어 했다. 그래서 여러 스타일의 작곡이 가능한 Ponce에게 모방곡(Pastiche)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다른 악기들처럼 모든 시대에 걸친 레퍼토리가 필요했던 Segovia와 이에 호응한 Ponce가 지속적으로 편지를 교환하며 의견을 나누고 협업을 한 결과 여러 명곡들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두 거장의 이런 헌신으로 탄생한 첫 곡은 <Homage a Sor(소르 찬가)>로 알려진 <Sonata Classica>였다. Segovia는 연주회에서 이 Ponce의 곡을 Sor 작곡이라며 연주하였고, 마지막 악장을 진짜 Sor가 작곡한 <Grand Sonata Op.22>의 마지막 악장으로 끼워 넣었다. 물론 악보를 출판할 때는 Ponce 작곡임을 명시했지만 어쨌거나 청중을 상대로 의도적인 장난을 친 것 맞다.

 

이 곡 이후엔 <Homage a Schubert(슈베르트 찬가)>로 알려진 <Sonata Romantica>가 나왔는데, 이번엔 Schubert의 화성을 기반으로 하는 식의 작곡이 계속된 것이다. 이밖에도 여러 곡에 얽힌 뒷얘기가 있지만 너무 길어지니까 다시 Preludio로 돌아가자. (더 이상의 얘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은 이 담에 시원~한 막걸리를 마시면서... ㅋㅋ)

 

아무튼 Ponce는 이 PreludioBalletto와 함께 바로크 시대의 곡으로 위장했고 모음곡 중의 일부가 되기를 의도했지만 결국 그 모음곡이 완성되지는 않았다. 기타 솔로 버전의 Preludio 필사본은 스페인 내전 와중에 바르셀로나에 있던 Segovia의 집에서 파손되었으나 Harpsichord와의 중주 버전 필사본은 멕시코에서 살아남았다.

 

1959Segovia가 이 곡을 하프시코드 연주자 Rafael Puyana와 함께 녹음한 앨범이 <Segovia Golden Jubilee>였는데 속지에 독일의 작곡가이자 류트 연주자인 Sylvius Leopold Weiss(1686-1750)는 당시 가장 유명한 작곡자였으며... (중략) ... 이 전주곡은 멕시코의 작곡가 Manuel Ponce가 편곡하여 남미의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Rafael Puyana가 연주한다라고 되어 있다. 종종 한 세트처럼 묶여서 연주되는 Balletto와 함께 이 Preludio가 아직도 S. L. Weiss 작곡으로 명기된 음반들이 있는 걸 보면 이 앨범이 바로 거짓 작곡자의 기원일 것이다.

 

내가 이 곡을 처음 접한 건 Christopher Nupen 감독의 1976년 작 다큐멘터리인 <The Song of the Guitar>에서  Segovia가 연주하는 모습으로 기억한다. 당시 83세인 SegoviaAlhambra 궁전에서 밤을 새워 녹음한 영상으로, 1980년대 기타에 미친 젊은이들이 서로 빌려주고 빌려오고, 보고 또 보고, 술자리에서 한 얘기 또 하고... 하는 명작이다. 정장을 차려입고 두꺼운 돋보기를 쓴 노년의 거장은 Ballet(to)와 함께 Preludio를 연주했고, 묘한 분위기와 정서를 뿜어내는 두 곡을 여유롭게 연주하는 모습에 그저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에 악보와 영상이 넘쳐나는 시대에만 사는 사람들은 이해가 힘들겠지만, 당시엔 아무리 좋은 곡도 악보를 구할 수 없는 게 태반이었다. 십수 년을 그냥 듣기만 하다가 훗날 이 곡이 수록된 악보 책을 보자마자 구입했고, 어려워서 시작도 못한 채 세월이 갔고, 결국엔 달려들어 암보는 했어도 제대로 소화하기까지는 역시나 지난한 과정이었다. 가끔 혼자서 띵똥거리며 즐기기는 했지만 왼손이 고문당하는 수준에서 녹음은 무슨... 언감생심이란 바로 이런 때 쓰는 말이었다.

 

또 수년이 흘러갔고, 연습 삼아 치는 횟수도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했으며 암기와 망각도 덩달아 반복되었다. 이러다가는 이런 명곡을 평생 녹음 한 번도 못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랴, 삑사리가 반이 넘는데... (언젠가 찍은 영상에 연습 장면이 있는 것 같아 블로그를 뒤져보니 2014년에도 엉망인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때 이미 암보가 된 상태니까 최소한 이보다 수년 전에 시작했을 테고, 그러니 도대체 몇 년을 연습만 한 건가... 이게 바로 아마추어의 위엄이다.)

 

어쨌든 이렇게 솔로 버전만 생각하고 삑사리와 어우러진(!)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예전에 구입한 음반에서 하프시코드 반주의 중주 버전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하지만 악보가 없으니 그 버전 역시 그냥 감상용으로만 남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정말로 우연히 인터넷에서 중주 버전의 Midi 파일을 '영접'하게 되었다. 이게 웬 떡이냐 하고 Sibelius로 열어 보니 기타와 하프시코드가 난무하는, 그야말로 혼돈의 세계가 나타나는 거다. 무슨 일이든 의지가 필요한 법. 기타 파트를 골라내고 하프시코드 반주를 MP3로 추출하니 이제 중주를 연습할 준비 단계가 끝난 것이다.

 

여기서 준비라는 말이 바로 함정이다. 혼자 하는 것과 컴퓨터가 연주하는 파일에 맞춰 기타를 치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도 아니다. 내 혼자야 마음대로 템포를 정하고 중간에도 늘였다 줄였다를 하지만 일단 시작을 클릭하면 빚쟁이도 이런 빚쟁이가 없다. 앞에선 기다려 주지 않고 뒤에선 일관되게, 더구나 '일말의 자비도 없이' 쫓아온다. 꿈에서도 빚쟁이에게 쫓기는 상황이 되는 거다. 결국 연습 그리고 연습, 숙달 그리고 숙달 밖에는 답이 없다. 중주를 혼자 여러 번 녹음해서 합치려고 연주할 때는 적막함 속에서 그저 ---...’을 무한반복하는 메트로놈에 맞추는 목가적인(!) 평화가 있는데 이건 온갖 난삽한하프시코드 소리에 맞춰야 한다. 어떤 부분은 반주 타이밍이 맞는지 의심스럽게 들리지를 않나 또 어느 곳은 살짝살짝 엇박자처럼 32분 쉼표를 기다려 들어가야 하질 않나...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할까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지만 어쩌랴, 이미 시작한 건데 끝은 봐야 하지 않겠는가.

 

솔로 버전의 연주는 Andrés Segovia, John Williams, Christopher Parkening 등 내로라하는 대가들을 비롯하여 국내 연주자의 영상까지 유튜브에 넘쳐나고 있다. 하프시코드와의 중주는 Andrés Segovia의 음반과 John Williams의 음반에 실려 있는데 둘 다 하프시코드 반주는 Rafael Puyana로 되어 있다. 대개의 솔로 버전 연주보다 아주 느린 속도라서 이미 솔로 버전의 빠르기를 체험(?)한 사람에겐 답답하게 들릴 정도다.

 

이미 연습하던 솔로 버전과 기존 대가들의 녹음 버전의 중간쯤으로 속도를 잡았다. 너무 느린 건 성격 급한 나에게 또 하나의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도 있으니까... 훨씬 빠른 솔로 버전을 이미 오랜 기간 연습해 왔던 덕에 처음엔 중주 버전이 여유로워 보였다. 그러나 녹음이든 무대 연주든 시험대에 오르는 건 언제나 시간이 갈수록 점점 무거워지는 짐이다. 녹음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올수록 나름대로 느리다고 생각한 속도가 온몸을 사슬처럼 조여 오는 거다. 결국 생고생을 해서 하프시코드 반주에 맞추어 녹음을 마치긴 했는데, 언제나 그렇듯 다 해 놓고 보면 아쉬운 부분이 마음 한켠에 남는다.

 

이럴 땐 아마추어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이자 무한한 핑곗거리인가... 라고 애써 생각하며 억지로 Happy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