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릴 때부터 2016년 말까지 여러 종류의 앵무새를 비롯해 카나리아, 문조까지 섭렵하였으니 얼추 10년도 넘게 우리는 새와 함께 산 셈이다. 아이가 유학길에 오르자마자 당시 키우던 Green-cheeked Conure와 용품 등 모든 것을 후련하게 정리했는데, 졸업을 하고 돌아오더니 또 뭔가를 키우고 싶어 했다. 나 역시 동물을 좋아해서 강아지든 뭐든 키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공동주택의 한계를 넘을 수 없으니 결국 집에 들이는 건 다시 앵무새로 당첨되었다.
이리저리 종류를 알아보며 고민하다 '앵무계의 비글'이라고 불리는, 에너지 넘치고 먹성 좋고 영리하다는 검은머리 카이큐(Black-headed Caique: 발음은 '카이잌'에 가까운데 우리나라에선 '카이큐'라고들 한다)에 꽂혔다. 인터넷과 유튜브의 덕으로 이놈의 행동과 습성 등을 대충 알아볼 수 있었으나, 의외로 높은 가격에 망설이다가 일부를 부모가 대고 아이가 매달 조금씩 갚는 선에서 타협을 보았다.
개체 수가 많지 않다 보니 쉽게 분양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부천의 어느 업자에게 선입금을 하면서까지 예약하고 샵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결국엔 일이 꼬여버렸다. 잘못 없는 소비자가 오히려 속앓이를 하다 무려 24일만에 어렵게 환불받고 거래를 끝내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이렇게 여름 방학을 허송...) 세상엔 '주둥이'로만 사업을 하는 인간이 꽤 많다!
그러다 드디어 8월 15일, 비 오는 광복절 아침에 경기도 동탄으로 달렸다. 지저분하고 영세한 예전의 조류원과 달리 부모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이 체험도 하고 음료도 마시는 카페 형태의 샵을 방문해 수컷 유조 한 놈을 '모시고' 왔다. 동물이건 사람이건 낯선 환경에 처음 가면 어리바리한 법. 게다가 막 이유식이 끝난 놈이라 아직 착해 보이기만 하고 뭔가 어설프지만... 머지않아 마각이 드러날 테고 어떤 개구진 짓을 할지, 무슨 사고를 어떻게 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망의 Unboxing! 영문도 모른 채 먼 길을 와서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아직은 순하게만 보이는데... 훗날 말썽쟁이가 될 거라는 게 아직은 믿기지 않는다.
아들의 손 위에서 잠이 들었다, 그것도 아주 늘어지게. (바나나인 줄...)
* 이미 작년 8월에 이 글을 써놓고 올릴 수가 없었다. 위 사진을 찍은 뒤 상상도 못한 반전이 있었던 것이다. 다리 힘이 좀 없어 보이고 횃대에서도 툭툭 떨어져서 아직 어려서 그런가 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무지개 다리'를 건넌 것이다. (대체로 조류는 그렇게 별 증상 없이 갑자기 죽는 경우가 꽤 있다.)
분양 받은 지 이틀 만에 이런 일이 생겨 샵에 연락을 하니 사장은 군말 않고 100% 환불을 해주었다. 다만 사인을 가리기 위해서 사체를 충북대 수의대 어느 교수에게 보내 달라고 했고, 택배로 보내는 대신 아이가 직접 버스 타고 찾아가서 전달했다. 부검을 통해 원인을 알아야 샵에서도 차후 같은 일의 재발을 막을 터.
다소 황당한 일이었지만 깔끔하게 사후 처리를 해서 그 뒤 더 알아볼 생각은 안 했는데, 아마도 샵에서부터 감염된 바이러스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특정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다리 힘이 없어지는 증상으로 시작되어 결국 사망에 이른다고 하는데, 바로 이런 경우였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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