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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무대공포' 치유 스프레이로도?

볕좋은마당 2016. 4. 9. 10:06

 

‘애착을 유발하는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의 효과에 대해 뇌과학자들의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시중에는 옥시토신 스프레이가 팔린다. 정치인은 유권자의 호감을 끌어내기 위해 이를 활용하려고 상상할 수도 있다. 톰 티크베어 감독의 영화 <향수>(2006)의 주인공 장바티스트 그르누유가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되는 향수’를 만든 것처럼. 서밋엔터테인먼트 제공

‘애착을 유발하는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의 효과에 대해 뇌과학자들의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시중에는 옥시토신 스프레이가 팔린다. 정치인은 유권자의 호감을 끌어내기 위해 이를 활용하려고 상상할 수도 있다. 톰 티크베어 감독의 영화 <향수>(2006)의 주인공 장바티스트 그르누유가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되는 향수’를 만든 것처럼. 서밋엔터테인먼트 제공
[토요판] 정재승의 영혼공작소

(9) 뇌 조절과 옥시토신
흔히 그런 이야기들을 한다. 젊은 사람들은 진보적 성향이고, 나이 들면 보수적 성향일 것이라고. 상대적으로 변화와 도전에 익숙한 나이와 안정과 실리를 찾아가는 나이는 분명 있다. 그래서 이러한 사회과학적 분석은 타당하다. 이 역시 오랜 관찰과 연구에서 온 것일 게다.
하지만 요즘 뇌과학자들 사이에선 이런 말들이 나온다. “뇌를 자극하면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을 바꿀 수 있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의 귀가 가장 번쩍 뜨일 한마디일 게다. 실제로 영국 서식스대학 심리학과 캐럴라인 초크와 가나이 료타 박사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논문을 지난 1월 발표했다. 배외측 전전두피질(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 DLPFC)을 자기장으로 자극하면, 정치적 신념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논문이었다.
배외측 전전두피질은 원래 자신의 실수를 살펴보면서 바로잡는 역할을 하는 뇌 영역이다. 자기장을 통해 이 영역을 자극하면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크게 다른 정당에 대한 반감이 줄어든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흥미롭게도, 특정 정당을 싫어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다만 싫어했던 정당을 덜 싫어하게, 혹은 좋아하게 만들 수는 있는 것이다.
들쥐의 바람기 연구
요즘 인터넷에선 모자 형태로 간단하게 만들어진 뇌자극기가 값싸게 거래된다. 매뉴얼대로만 하면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디아이와이(DIY·Do it yourself)형 뇌자극기도 판매되고 있으며, 유튜브에선 9볼트 건전지로 뇌자극기 만드는 법을 자세히 설명해주기도 한다.(독자들에게 이것을 권하는 건 아니다.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정치인들은 강한 유혹을 느낄 것이다. 뇌를 자극해서 사람들의 정치적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나에 대한 호감을 늘릴 수만 있다면!
실제로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을 주입하면 나에 대한 호감을 증가시킬 수 있다. 정치인들의 눈이 번쩍 뜨일 얘기다. 옥시토신 연구에 대한 본격적인 시작은 들쥐 연구에서 비롯됐다.
미국 들쥐 ‘불스’는 서식지에 따라 애정생활이 전혀 다르다. 북아메리카 중서부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들쥐 불스는 냄새를 통해 적합한 파트너를 찾아 끔찍이 서로를 아끼는 낭만주의자들이다. 그들은 평생 한 파트너하고만 짝짓기를 하며, 나중에 직접 만든 둥지에서 새끼를 함께 돌본다.
반면 산에서 서식하는 불스는 대초원 불스와 생김새는 거의 비슷하지만, 애정생활은 정반대다. 수컷은 새끼를 낳아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며, 곧장 다른 암컷의 치마 속을 호시탐탐 노린다. 한마디로 말해 ‘바람둥이 쥐들’이다.
유전자 측면에서만 보면, 두 들쥐는 거의 동일하다. 그러니 산에서 서식하는 들쥐를 그토록 불성실한 수컷으로 만드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 15년간 들쥐들을 연구해온 미국 에머리대학 래리 영 박사팀은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성실한 수컷 들쥐에게 ‘바소프레신’이란 호르몬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하고, 암컷에게는 ‘옥시토신’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했다.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은 자식과 배우자에 대한 ‘애착을 유발하는 호르몬’인데, 이들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하자, 순식간에 그들의 태도는 돌변했다. 평소에 그렇게 자상하던 수컷이 교미가 끝나기가 무섭게 자취를 감췄고, 암컷 또한 파트너에 대한 흥미를 곧바로 잃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 연구 결과였다. 이번에는 산에 서식하는 들쥐를 유전적으로 변형해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 수용체의 양을 늘렸더니, 바람둥이 수컷 들쥐들이 갑자기 ‘자상한 아버지’로 돌변했다. 예전의 불성실함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대초원에 서식하는 들쥐처럼 그들도 이제 한 파트너에게 전념하고 새끼를 키우는 데 전념하더라는 것이다.
이 연구는 미국 사회에서 엄청난 논란이 되었다. 비록 들쥐를 통한 연구 결과이긴 하지만, 이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왜 사람들이 결혼생활이 깨질 수 있음에도 혼외정사를 꿈꾸는지’ 실마리를 제공한다. 바람을 피우는 행위가 바소프레신 혹은 옥시토신의 양에 따라 결정되는 건 아닌가 하는 주장을 이 연구가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실험에서 피험자들에게
옥시토신을 주사로 주입했더니
상대방 말 잘 듣고 쉽게 설득
‘무시무시한 적용’ 가능성으로
뉴로마케팅 학자들 사이 논란도
백화점에서 옥시토신 향수가
조금씩 뿌려져 나온다면
고객은 점원에게 쉽게 현혹될까
정치인들은 옥시토신 스프레이로
유권자의 정치적 신념을 뒤흔들까
‘마음 읽기 기술’에서 ‘마음 조절 기술’로
이 연구를 좀 확장해서 해석해보자면, 우리가 그토록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순애보적인 사랑’이나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불륜적인 사랑’ 안에는 생물학적인 요소도 어느 정도 포함돼 있음을 시사한다. 뇌 속에 어떤 호르몬이 좀더 지배적인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사랑관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남자들의 바람기가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것이라는 연구 결과는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팔다리가 없는 장애인으로서 사회적 성공을 거둔 일본인 오토타케(<오체불만족>의 저자)가 5번이나 다른 여성과 불륜관계를 가진 것을 두고 일본 사회가 발칵 뒤집혔는데, 신체가 완전하지 않아도 뇌 속의 호르몬만 정상적으로 분비되면 사실 이건 과학적으로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바람을 피우는 게 여전히 도덕적 논란의 대상이 되어야겠지만.
이 연구를 계기로, 옥시토신이 사회적인 행동을 관장하는 호르몬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신경과학자들에게 새롭게 주목받게 되었다. 옥시토신은 원래 출산한 여성의 몸에서 분비되어 자궁을 수축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기능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연애를 하는 동안에는 도파민이 우리의 쾌락중추에서 왕성히 분비되지만, 3년 후 안정적인 상태로 접어들면 그들을 안정적인 관계로 바꾸어주는 것도 바로 옥시토신이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폴 잭과 그의 동료들은 2007년 <네이처>에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을 발표한다. 피험자들에게 옥시토신을 주사로 주입했더니, 피험자들이 상대방의 말을 잘 믿고, 쉽게 설득되며, 투자게임(Investment game)에서는 상대방에게 대조군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옥시토신은 사람을 쉽게 설득되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정치인들의 눈이 번쩍 뜨이는 소식 아닌가!
옥시토신을 주입받지 않은 피험자들은 상대방의 행동을 믿지 않고 투자를 하는 데 조심스러웠으나, 옥시토신을 주입받은 피험자들은 상대방을 너무 쉽게 믿었다. 옥시토신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인위적으로 ‘친밀하고 신뢰있는 관계’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실제로 이 연구 결과는 뉴로마케팅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 논문의 행간을 읽어보면 ‘무시무시한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내가 화장품 방문판매업자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아파트 단지에 가서 무작위로 방문해 화장품을 팔지 않고 ‘출산한 지 3년 이내의 여성’이 전업주부로 있는 집을 방문해 화장품을 팔면 판매 성공 확률이 5배 이상 높게 된다. 이제 방문판매나 영업을 할 때도 ‘뇌에 대한 이해’가 깊으면 남들보다 더 영업을 잘할 수 있는 노하우를 얻을 수 있다.
‘출산한 지 3년 이내의 여성’이 전업주부로 있는 집을 찾는 것도 귀찮고 힘들다고? 그럼 액체 옥시토신 스프레이를 가지고 다니면서 초인종을 누르면서 뿌리면 어떨까? 자연발생적인 옥시토신이 아니라, 평소 옥시토신을 가지고 다니면서 사람들의 의사결정을 컨트롤하면 어떨까?
실제로 이런 무시무시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다. 액체 옥시토신을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액체 옥시토신이 인터넷에서 널리 판매되고 있는 데는 미국의 결혼중매회사(match-making companies)들의 역할이 컸다.
미국에도 최근 배우자를 찾아주고 맞선을 주선하는 회사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을 찾는 남녀 싱글들은 -근사한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35살이 되도록 여성과 한 번도 키스를 안 해봤다거나, 35살이 되도록 남자 손을 한 번도 잡아보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좋은 사람들을 서로 만나게 해주어도 맞선 자리는 어색하고 불편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결혼중매회사가 마련한 궁여지책이 바로 ‘옥시토신 스프레이’다. ‘쑥스러움 방지제’(Anti-shyness spray)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는 이 제품을 맞선 전에 미리 두 싱글에게 뿌려주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매우 유효했다. 평소 같았으면 제대로 말도 못했던 노총각, 노처녀 숙맥들이 “당신을 만나기 위해 35년을 기다려왔어요”와 같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멘트를 서슴없이 하게 된 것이다.
옥시토신 스프레이는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을 일시적으로나마 외향적으로 바꿔주는 효과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것이 과학적인 것이든, 혹은 잠시 자신을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든,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있는 사람이거나 누군가를 설득해내야 하는 과제 앞에 있는 사람에게는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일 게다.
지금까지 뉴로마케팅은 소비자의 뇌를 측정해 그들의 마음을 읽으려 하는 ‘마음 읽기 기술’(mind-reading technology)이 주였다면, 앞으로는 소비자의 뇌를 조절해 마음을 움직이려는 ‘마음 조절 기술’(mind-modulation technology)이 등장할 것이란 얘기다. 물론 법과 상식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뇌 조절 욕망 규제할 방법은 없어
만약 백화점 매장에서 옥시토신이 섞인 향수가 조금씩 뿌려져 나온다면, 매장을 찾은 고객은 과연 점원의 제품 소개에 훨씬 쉽게 현혹돼 구매 의사가 증가할까? 또는 페로몬이 묻어 있는 제품이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더 강하게 자극할까? 앞으로는 영업사원들도 신경과학을 알아야 하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이를 정치에 적용해보자. 정치란 본질적으로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타협해 나가면서 좀더 나은 세상으로 한발짝 나아가는 행위다. 정치적 신념이 다른 사람들이 상대방을 설득하고 자신의 의견을 설파하는 과정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그런데 간단한 스프레이나 뇌자극기가 정치적 신념을 뒤흔들 수 있다면, 정치적 논쟁에서 좀더 유리한 고지에 내가 먼저 올라갈 수 있다면, 유혹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역구를 돌면서 옥시토신 스프레이를 뿌리는 정치인이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콘텐츠와 내공 없는 정치인이 옥시토신 스프레이 하나만 믿고 있다간 유권자들이 금방 실력을 알아챌 테니 이 점은 참조하시라.
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뇌를 자극해서 남의 호감을 사거나 정치적 신념을 바꿀 수 있는 기술도 얻게 될 것이다. 뇌를 조절하고 싶은 우리의 욕망 또한 커질 것이다. 현재 이런 발생 가능한 문제를 어떻게 규제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규제할 방법이 없다. 그저 이런 일이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다.

 

정재승 교수
    
▶ 정재승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박사를 받은 뒤 예일대 정신과 연구원,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조교수 등을 거쳤다.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크로스>(공저) 등의 책을 냈다. 신경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의 행동을 탐구하는 연구를 해오고 있다. 이 연재물은 영혼을 조종하는 뇌의 탐구를 통해 자연과학과 공학·인문학·사회과학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를 모색하려는 시도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