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거슨... 아마도 (분명히?) 눈탱이!
'바가지'를 썼다느니 '사기'를 당했다느니 하는 점잖은 표현을 쓰면 어쩐지 분위기가 살지 않는다. 그래서 '눈탱이'라는 전문용어(!)를 쓰는 게 딱 좋을 것 같다.
이제는 교육 수준이건 문화의 역량이건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일은 찾아보기 힘든다. 선진국이라는 프랑스에서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스페인에서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리거나 이탈리아에서 여권을 도난당했다는 경험담을 들을 때면 역시 우리나라가 최고라는 생각에 가슴이 웅장해진다. 서울의 붐비는 거리라 해도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면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요즘처럼 소셜서비스가 발달된 마당에 외국인을 상대로 '눈탱이'를 치는 식당이 있다면 발각되는 순간 사회에서 매장될 각오를 해야 하지 않을까.
1. Venezia의 식당에서
이탈리아의 Venezia는 관광으로 먹고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여름 땡볕 아래서 캐리어를 끌고 찾아가는 호텔은 지도상의 거리보다 더 멀게 느껴졌다. 아직 허기질 시간은 아니었지만 쉬었다 갈 겸 길가의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만사 귀찮은 탓에 메뉴를 들여다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맨 위에 보이는 스파게티를 선택했다.
해물 어쩌고 하는 스파게티 치고는 가격이 싸서 시켰는데 밑에 깔린 바닷가재를 보고 이게 웬 횡재인가 싶었다. 크기는 좀 작았지만 역시 바닷가라 해물이 싼가보다 했다. 성수기의 관광지라는 사실도 깜빡 잊은 채 기분 좋게 먹고 계산을 하는데, 금액이 글쎄... 이건 아닌 거다. 얼결에 카드 결제는 했지만 그렇게 비쌀 리가 없어서 메뉴를 다시 보자고 했다.
결론은 '나쁜 놈들'이다. 어이없는 일을 자꾸 되새기는 건 기분만 상하는 일이라 그냥 잊으려 했던 게 효험(!)이 있어서 이제는 자세한 숫자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키보드 앞에 앉은 김에 우리나라 식당으로 바꿔 예를 들어 보겠다. 이런 식이다. 메뉴판에는 '해물 칼국수'라고 되었지만 옆의 작은 글씨가 함정. "1.5만 원(바닷가재 100g)"이라고 찍혀 있다. 더위에 지친,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 부부가 간신히 해물 칼국수를 알아보고는 '그래도 관광지인데 1.5만 원이면 뭐 괜찮네'라면서 두 그릇을 주문한다. 바닷가재가 한 마리씩 깔린 걸 발견하고는 '오! 이 가격에 바닷가재라니'... 맛나게 먹고 계산대에 섰는데, 알고 보니 바닷가재는 300g 짜리였고 결국 5만5천 원을 지불한 거다. 그래도 주인은 칼국수는 만 원만 쳤으니 우리 식당은 관광객을 정말 싸고 맛있게 모신다고 자랑하는 형국이다.
아내는 '맛있게 잘 먹었으면 됐지, 뭐'라며 눈탱이에 취약하기만 한 여행자의 '숙명'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씁쓸했지만 앞으로는 메뉴판을 꼼꼼히 봐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되었으니 나름대로 수업료를 낸 만큼 교훈을 얻긴 한 거다.
그런데 웃기는 건 귀국해서였다. 떠나기 전엔 여행지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하나도 안 봤는데 돌아와서는 다녀온 곳을 다루는 유튜브를 틀어보는, 어찌 보면 남들과 거꾸로 된 순서로 갔다. 그런데 어떤 50대 한국인 아저씨가 하필 이탈리아에서, 하필 Venezia에서, 그것도 하필 비슷한 해물 스파게티를 시키고 바가지를 쓰는 영상을 올린 거다. 그 식당인지는 알 수 없는데, 판박이처럼 똑같은 눈탱이를 당하는 모습이라니... 맛있게 먹고 나서 계산을 하면서 놀라고, 교묘한 메뉴판을 확인하며 열받는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우핫핫, 너도 당했구나.'
2. Istanbul의 공원에서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돌마바흐체 궁전(Dolmabahçe Sarayı)이라는 석조 건축물이 있었다. 이런 유명 관광지란 현지인들은 잘 안 가도 평생 다시 오기 힘들 여행자들은 숙제하듯 꼭 들르는 곳이라는 뜻이다. 버스를 타도 되지만 운동 삼아 걸을 만한 거리라 지도를 보며 혼자 찾아가기로 했다. 큰길로 가면 좀 도는데 녹지로 표시된 곳을 택하면 질러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들어선 길은 커다란 공원으로 이어졌다.
비탈길을 내려가다 작은 나무통을 메고 올라오는 남자와 마주쳤다. 인적이 드문 좁은 길이라 본능적인 경계심이 들기도 했지만 이미 들어선 길에서 되돌아갈 수도 없으니 애써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비껴 지나쳤다. 그 순간 내 앞의 바닥에 뭔가 뚝 떨어졌는데, 방금 지나친 그 남자가 흘린 구둣솔이 아닌가. 그것도 모른 채 계속 올라가던 남자를 불러 세우고 떨어뜨린 물건이 있다고 알려줬다. 꼭 친절해서가 아니다. 이 상황에선 누구나 그러지 않았을까.
남자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구둣솔을 주워 넣으며 연신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자신은 앙카라에서 왔노라며, 고마움이 가득한 표정에다 '잘하는 영어'로 말했다. (편견을 가지면 안 되지만, 그의 영어 능력과 구두닦이 일이 생계 수단이라는 사실의 부조화가 어색한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보답으로 신발을 닦아줄 테니 빨리 발을 앞으로 내밀라고 했다.
웃기는 일은 여기서부터다. 구둣솔을 잃어버리는 건 생계에 지장이 될 만한 일이니 그 정도 감사의 표시는 일면 수긍이 간다. 그런데 내가 신고 있던 건 출국 전 이마트에서 산 Crocs! 음핫핫... 아무리 호의라도 맨발에 구멍 숭숭 뚫린 플라스틱 크록스 샌들인데 어쩔! 당연히 손사래를 쳤다. 이걸 어떻게 닦냐고, 안 그래도 된다고 사양을 해도 그 남자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눈꼬리를 내리며 세상 애절한 표정을 지었다. 허허... 참나... 할 수 없지, 그냥 대충 닦는 시늉만 해도 좋다는 생각에 마지못해 승낙했다.
상상이 가는가, 공원 오솔길에서 반바지 차림의 외국인이 신은 크록스를 현지인 구두닦이가 무릎을 꿇고 털고 닦는 모습이. 검은색 크록스에 검은 구두약을 바르는 것까지는 하릴없이 보고 있었는데, 가죽용 크림까지 꺼내 바르면서는 뭔가 쎄~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이놈이... 왜 오버를...
호의도 지나치면 부담이 되는 법이다. 매우 부담스러운 과정이 끝나고 좌~연스럽게 빠이빠이를 하려는데 이놈이 정색을 하며 닦아준 값을 내란다. 뭐 이런... 황당하지 않겠는가. 아니, 네가 고맙다며 일방적으로 닦아준 거지 내가 언제 닦아달라고 했냐. 이 정도 얘기가 이해되었다면 벌써 그대로 헤어졌겠지만 이미 분위기는 반대로 흘러가 버렸다. 문제는 그놈이 나보다 키도 크고 체구도 건장하니 괜히 딴마음 먹었다간 타국에서 병원에 실려갈 공산이 크다는 거였다. 게다가 주위에 사람도 보이지 않으니 그 재수 없는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은 그냥 순순히 몇 푼 주고 헤어지는 것뿐.
얼마를 원하냐고 했다. 애초에 합리적인 가격이었다면 '그 남자'를 '그놈'이라고 기억하지 않겠지. 한쪽 당 x 리라니까 두 쪽에 2x 리라를 달라고 했다. 한 쪽 당 얼마라고 하는 거 보니 이미 이놈은 다 계획이 있었던 거다. 마침 가진 현찰이 두 쪽 가격에 부족한 만큼이어서 이게 다라며 줘버리고 황급히 헤어졌다. 그놈이 달라는 대로 다 줬다면 더욱 깊은 빡침이 있었겠지만 그나마 덜 준 것이 스스로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살다 살다 별 희한한 놈을 다 봤다는 생각은 며칠 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곰곰 돌이켜 보니 그놈이 구둣솔을 떨어뜨린 건 고의였다는 생각이 슬슬 고개를 들었다. 하필이면 둘이 지나치는 순간 생계 도구를 떨어뜨린 거며, 굳이 싫다는데 크록스라도 닦아주겠다고 고집 피운 거며, 사람이 없는 외진 공원에서 어리바리해 보이는 외국 여행자를 상대로 한 행동 모두가 놈의 기획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굳어갔다. 이런 젠장. 그렇다면 글자 그대로 타깃이 된 것이었을까, 나 말고도 또 그렇게 당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놈은 지금도 그런 식으로 눈탱이를 치고 있지 않을까... 오만가지 추측이 점차 확신으로 변해갔다. 그렇지 뭐, 눈탱이 맞은 거다.
이런 요상야릇한 일을 겪고 나서 뒤늦은 지혜(?)가 생겼다. (특히 후진국에선) 괜히 호의를 베푸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돈 몇 푼 벌자고 외국인에게 호의를 베푸는 일은 상상할 수 없지만, 그런 곳에서는 호의 뒤에 돈을 요구하지 않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역시나... 여행의 효용은 내 집이 최고라는 걸 재확인하는 것이고, 집 떠나면 (개)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