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o한.../일상

손톱 수리 feat. 탁구공

볕좋은마당 2022. 12. 18. 15:54

학창 시절,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손톱이 부러지면 탁구공으로 잘라 붙이는 게 최고야."

'에이, 설마...' 했다. 아무리 선생님이 탁구를 잘하셔도 그렇지, 탁구공으로 손톱을 만든다니.

무릇 클래식기타 애호가라면 손톱을 신줏단지 모시듯해야 한다. 비싼 악기를 갖고 있어도 손톱 관리를 하지 않고 치면 말짱 헛짓이 된다. 그 좋다는 벤츠 마이바흐를 탄다고 자랑할 게 아니다, 리어카 타이어를 끼웠다면.

그래서 웬만해선 문 손잡이 돌릴 때도 왼손으로, 엘리베이터에서도 오른손을 써야만 할 땐 꿀밤 주듯 손가락을 굽혀 버튼을 누른다. 이 정도는 기타 애호가의 숙명이니 그러려니 한다. 게다가 건조한 겨울엔 손톱이 더 잘 부러지므로 특히 조심해야 하는 것도 안다.

하지만 살다보면 아무리 조심해도 1, 2년에 한 번쯤은 손톱이 부러지는 불상사에 맞닥뜨린다. 그럴 때마다 탁구공 얘기는 까맣게 잊은 채 손톱이 자라나기를 그냥 기다렸다. 살과 붙은 곳까지 부러지는 경우에도 대개 10일 정도 기다리면 연습할 만큼 자랐고,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는 말처럼 핑계 김에 당분간은 기타를 놓기도 했다.

그/런/데, 송년 모임이 예정된 어제 하필 a 손톱이 '대~차게' 부러진 거다. 연습 동영상이랍시고 호기롭게 찍어 올린 다음 날 새벽이었다. 잠결에 무심코 오른팔을 아래로 내리는 순간 뭐가 타탁 걸리는 느낌이 왔다. 이런 된장... 범인은 전기 모기채! 모기채의 철망을 내 손으로 긁다니... 정말로 된장이다.

그런데 왜 전기 모기채가 침대에 있냐고? 음... 공원과 산으로 둘러 싸인 집이라 11월에 말에도 모기가 매일 한두 마리씩 꾸준히도 들어왔다. 새벽 모기의 왱~ 소리에 시달려 본 사람은 안다. 이 (빌어먹을) 종족을 멸할 방법이 도대체 언제 개발되는지 궁금해지지 않는가. 자다가 모기를 잡겠다고 부랴부랴 불 켜고 모기채를 찾기 귀찮아서 침대와 벽 사이에 끼워 둔 게 화근이었다. 그걸 건드려 결국 애먼 손톱이 부러졌다는 얘기다.

당장 오후에 연주를 해야 하는데 비상 상황이 된 거다. 최근 여러 인터넷 카페에서도, 유튜브에서도 손톱 부러진 사람들이 수리하는 방법에 대해 올린 걸 보기도 했는데, 단연 탁구공이 최선이라는 결론이었다. 선생님의 말씀이 피부에 와닿는 순간이 무려 40년이 지나서라니!

뭐든 다 있다는(!) 다O소에 가서 탁구공을 샀다. 무려 10개에 2,000원. 내심 더 좋은 걸 바랐지만 이것 한 가지밖에 없단다. 아무렴 어떠랴, 급한데 이것저것 가릴 계제가 아니다. 아울러 필요할 것 같은 장비를 늘어놓았다.


멀쩡한 m 손톱과 대비되는, 사고를 당한 a 손톱


탁구공을 대충 잘라서 아래쪽을 원형으로 자른 후 손톱 아래에 최대한 밀어 넣는다. 여기서 (의외의) 주의 사항은 바깥쪽의 면적을 넉넉하게 줘야 한다는 거다. 밀어 넣거나 붙는 동안 다른 손으로 잡고 있을 공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순간접착제로 붙여서 굳힌다. 손톱 아래 면과의 사이에 틈이 없이 붙도록 누군가 조수 노릇을 해주면 더 좋겠다.


붙은 뒤 손톱깎이로 대충 곡선을 정리했다. 살살 조금씩 잘라야 한다. 자칫 방심하다간 떼어내고 처음부터 다시 하는 더 큰 불행이!


이제부턴 줄과 버퍼의 시간. 원래 내 손톱인 것처럼 살살 줄로 다듬으면... 곤란해질지도 모른다. 손톱보다 물러서 더 잘 갈리는 게 느껴진다. 저가형 탁구공이라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줄로 대충의 모양을 만들었으면 드디어 버퍼로 정~성~스~럽~게 갈고닦는다.


짜잔~! 이 정도면 뭐, 대략 성공이 아닌가. 그런데 자연물보다 인공물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아이러니가... 왠지 좀 서운...


오후 송년 모임에서 연주하는 데 걸림돌은 전혀 없었다. (무대에서 버벅거린 건 또 다른 문제이므로 여기선 침묵하는 걸로...) 오히려 손톱보다 더 두툼하고 살짝 경도가 낮은 느낌이어서 소리가 부드럽고 둥근 감이 있었다. 듣자 하니 David Russell이 음색을 위해 일부러 탁구공을 가짜 손톱(Fake Nail)으로 쓴다고도 하는데 일면 이해가 간다. 그리고 최근 유튜브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는 Drew Henderson의 영상에서도 간혹 흰색 손톱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역시 탁구공을 붙인 것일 텐데, 대가들의 선택이 그러하니 일개 애호가는 무작정 따르는 걸로...

여/기/서/잠/깐/
열 개 중 달랑 한 개를 썼으니, 남은 아홉 개는 이제 어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