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avier Jara 연주회
시원한 가을 토요일 저녁에 찾은 세종문화회관. 좀 일찍 도착하여 마침 얼마 전 재개장한 광화문 광장을 둘러보는 여유를 부렸다.
미국 태생의 연주자지만 스펠링만 봐서는 선뜻 어떻게 발음할지 모를 이름으로 미루어 멀리서 이주해 온 선조를 둔 듯하다. 대충의 검색으로 스페인어권의 성(姓)씨라는 게 드러난 정도. 하기야, 워낙 다양한 지역의 이주민이 모인 나라니까 기원에 대한 더 이상의 왈가왈부는 무의미하다. 기타만 잘 하면 되는 거지 다른 구별이 필요하겠나.
한국의 평범한 애호가가 외국 연주자의 콩쿨 성과 같은 이력을 알고 지내긴 쉽지 않다. 수많은 세계 콩쿨과, 또한 매년 그 콩쿨의 수상자들을 무슨 수로 다 기억하고 그들의 연주를 찾아본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내가 '무려' R석을 산 이유는 얼마 전 들었던 세계적 수준의 국내 연주자들(박규O, 김진O, 박지O 등)의 팟캐스트에서 언급된 이름을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사랑방 수다처럼 온갖 기타 이야기를 하는 팟캐스트를 재미있게 들었는데, 해외의 젊은 연주자들 중 훌륭한 연주자를 꼽아보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 Xavier Jara가 들어있었다. 이후 YouTube를 통해 명성에 걸맞은 연주력과 음악성을 보았는데, 마침 직관할 기회가 생긴 거다.
토요일 저녁의 연주회장을 찾은 사람들을 이렇게 나누어 보았다: 50%는 전공생과 프로 연주자, 나머지 50%는 아마추어 애호가들인 것 같은데, 쉽게 말하면 그냥 기타에 美친 사람들. 나의 분류에 반박하려면 프로그램을 보라! Manuel Maria Ponce의 두 곡을 마치면 Intermission이 되는 것만 봐도 바로 동의되지 않는가. 그 밖의 레퍼토리도 대부분 현대곡으로 채우다시피 했으니 음반에서건 YouTube에서건 클래식기타 곡을 좀 듣는 사람의 귀에도 버거운 곡 투성이다. 이런 레퍼토리를 보고도 표를 사는 사람 중에 Alhambra의 추억, Chaconne BWV 1004, Tango en Skai 같은 곡이 클래식기타 곡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수십 년 음반을 듣고 남의 연주를 본 사람으로서 웬만한 무대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곡들에, 국내 초연이 분명할 Rodrigo 찬가(1994년 생 작곡가가 Xavier Jara에게 헌정한 곡이니 누가 연주했겠는가)에, 주제와 변주 몇 개 들으면 바로 잠들어 버리는 현대곡에... 하여튼 어렵고도 어려운 레퍼토리다.
연주는 연주자의 명성만큼이나 훌륭했다. 악기가 연주자의 탄현을 충분히 받아주지 못하는 티가 났지만 그럼에도 악기 능력 이상의 소리를 냈다. 어떤 이들이 현대기타에선 '구닥다리'로 여기는 Apoyando의 강력하고도 적극적인 활용도 은근히 반가운 부분이었다. YouTube에서도 보면서 탄성이 나왔지만 손가락 기럭지를 활용한 운지는 늘 상상을 넘어섰다. 첫 곡에서 많이 나오는 Slur도 거의 여러 줄에 걸친 Campalla처럼 해버리는 정도니 손가락 짧은 사람들은 일단 기가 죽는다. 타고난 부분이야 어찌할 도리가 없다 쳐도 때로는 사자의 포효인 듯 때로는 봄바람의 살랑거림인 듯 넓은 표현의 범위는 많이 보고 배우고 익힐 부분이...지만 과연 그것도 게으른 애호가의 연습으로 흉내라도 될지는 의문이다.
여하튼 웬만한 연주회에서는 접하기 힘든 레퍼토리로 무장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경지를 선사한 연주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예전 Marcin Dylla 연주회에서도 느꼈듯 아마도 시차 적응의 문제로 연주자가 겪는 피로가 아닌가 싶다. 빠듯한 예산으로 운영하는 입장도 있겠으나, 입국 후 부족한 휴식으로 연주자의 집중력이 떨어져 곡 중간에 깜빡거리는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빠른 진행에선 슬쩍 넘어가기도 하는데 오히려 느리고 쉬운 부분에서의 멈칫함을 보는 관객은 괜한 걱정에 손에 땀이 나기도 한다.
이 기회에 음반을 갖고 있어도 여간해선 안 듣던 Ponce의 Variations sur "Folia de Espana" et Fugue 같은 곡에도 좀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싯적 Bach의 Chaconne는 20번쯤 들으니까 그제서 좋아지기 시작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렇게 난해한 현대곡은 주제 뒤 2변주 정도에선 잠이 들었으니까 아마도 100번 정도 들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봤는데...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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