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로 먹기
2022년 5월 25일 자 한겨레 신문
통신비·전기료…재택근무 비용을 왜 직원이 내야 하죠?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1044241.html
<장면 1>
1990년대 초의 얘기다. 공업/기술을 가르치는 M 선생님은 담당 과목에 어울리게 여러 쓸모 있는 기술을 갖추셨다. 전공인 전기에 특히 밝아, 청계천에서 부품을 사다 점프선을 직접 만들어주시는 등 그야말로 '맥가이버'급의 능력을 주변에 베푸셨다. 참고로, 점프선은 당시 운전자들에게 요긴했던, 이제는 추억의 물건이다. 배터리가 방전되면 지나가는 차라도 세워 양해를 구하고 그 차의 배터리와 연결해서 급한 대로 시동 걸고 출발하게 해 준 전깃줄이다. 웬만해선 배터리 방전을 겪지 않는 요즘 젊은 세대에겐 낯선 도구일 것이다. 설혹 그런 상황이 생겼다 해도 보험사에 연락하면 바로 달려오니까 운전자 스스로 보닛을 여는 일은 보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지은 지 오래된 학교라 전기 장치 고장이 잦았고 낡은 전선 등이 말썽을 일으켰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수업 중 교실에 불쑥 들어와 능숙하게 고치고 나가시곤 했는데, 흰 목장갑에 공구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영락없는 현장 기술자였다. 한번은 학교 축제의 연극 공연 중 무대 장치에서 고장이 생겼고, 이때 홀연히 등장한 M 선생님을 본 아이들이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거의 모든 교실을 목장갑을 끼고 드나들던 선생님이 뜬금없이 축제 무대 위에도 올라오셨으니 그런 반응이 당연했을 것이다.
<장면 2>
2000년대 중반의 얘기다. 늘 학기 초엔 대청소를 겸한 '환경미화의 날' 같은 행사가 있다. 유리창 찌든 때도 닦고 구석의 거미줄도 걷어내는 등 한바탕 소란 덕에 깔끔하고 쾌적해진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아울러 교내 여기저기 멋진 그림이 걸리기도 하는데, 규모가 어떻든 '미화'라는 행사에는 미술 교사의 손길과 수고가 제일 많이 동원되기 마련이다. 어떤 학교의 벽에는 미술 교사가 능력을 아낌없이 쏟아부은 훌륭한 작품이 걸리기도 한다.
어느 해엔가 학교 문집의 표지 배경이 멋진 추상화로 바뀌는 일이 있었다. 전년도까지만 해도 학교 전경 사진을 씀으로써, 학교에서 만드는 건 뭔가 성의가 없다는 고정관념이 지속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해엔 그림 볼 줄 모르는 사람의 눈길도 확 당길 정도로 표지가 멋지기에 누가 그린 그림일까 궁금했다.
교지의 수준을 한참 올려준 표지가 우리 학교 미술 선생님의 그림이라는 걸 알고는 괜한 딴죽을 걸었다. '미술 선생님은 미술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자기 직장이라고 해서 벽에 걸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거나, 문집의 표지 그림을 제공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라고... 우리 학교 소속 교사니까 전공을 살려 자기 직장에 작품을 하나 제공하는 게 대수냐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식의 사고 체계라면 <장면 1>에서처럼 학교 시설을 보수는 기술 선생님이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럼 행정실의 복잡한 회계 계산은 수학 선생님이 해야 하는 건가?
그 선생님은 예술의 전당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작가이기도 했다. 직장과 별개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자신의 창작품을 판매할 수도 있었다. 학교 문집에 쓸 그림인데 쓱쓱 하나 해주는 게 뭐 어렵냐고 했을지 모른다. 그럴 만한 소속 교사가 없다면, 그럼에도 수준 높은 표지 그림을 원했다면 외부 작가에게 돈을 주고라도 그림을 샀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단지 우리 학교 교사라는 이유로 작품을 공짜로 달라고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물론 저렴하게 했겠지만) 학교 측이 그림에 대한 금액을 지불했다는 소리를 나중에 들었다. 나 혼자만의 목소리였는지 같은 의견을 낸 다른 분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차제에 소속 교사의 오랜 수련과 노력의 결과물을 대가 없이 요구하는 관례는 점차 사라졌다.
<장면 3>
2010년대 초반의 얘기다. 행정실 직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미국에 이민 가는 학생인데, 재학 증명서와 성적 증명서 등을 영어로 만들어 가야 한단다. 간혹 이런 부탁을 받는데, 단지 영어 교사라는 이유로 종종 마주치는 일거리였다. 행정실 업무가 맞지만, 행정실 직원이 할 수 없는 일이니 일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영어를 가르친다는 이유로 영어 문서를 작성해야 한다면 교사가 행정직원 일까지 하는 셈이다.
재학 증명서 같은 것은 내용이 단순하니 그나마 낫다. 문제는 성적증명서다.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과목이 영어권에서 다루는 과목들과 조응이 안 될뿐더러, 한자어가 대부분인 관련 용어들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딱 맞게 옮기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차피 서명하는 그네들 문서와 학교장 직인을 찍는 우리의 문서는 동과 서의 대척점에 서 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막무가내식의 번역을 해야 했다.
190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Kipling도 자신의 시를 이렇게 시작하지 않았던가. Oh, East is East, and West is West, and never the twain shall meet, Till Earth and Sky stand presently at God's great Judgment Seat.(오, 동은 동, 서는 서, 이 둘은 영원히 만날 수 없으리라, 땅과 하늘이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대 앞에 이윽고 설 때까지는.) 이런 말을 위안이랍시고 뇌까리며 증명서를 번역했다. 용어만을 옮기는 게 아니라 그것의 개념을 전달해야 하는 게 제일 골치 아픈 부분이었는데, 문서를 볼 사람이 영영 이해 못 하면 어쩌나 하는 괜한 걱정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다행히 얼마 뒤 재학/졸업 증명서와 성적증명서 등의 영어 버전 표준 양식이 생겨 행정실에서 영어 교사에게 부탁하는 일도 점차 사라졌다.
<장면 4>
2010년대 중반의 얘기다. 일본 대학교에 입학하겠다고 추천서를 써달라며 온 녀석도 있었다. 내가 담임도 아니었고 내 수업도 겨우 한 해 들어서 잘 알지 못하는 학생이었는데 나에게 온 이유는 단 하나, 추천서를 영어로 써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합리적인 이유를 대면서 거절하는 게 구차해서 그냥 써주기로 했다. 첫해에 떨어지더니 다음 해에 또 와서 졸지에 두 번이나 썼고, 다행히 두 번째 도전에선 합격했다. 하지만 성공의 기쁨보다는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담임에게 가서 한글로 문서를 작성한 다음 어디 가서든 영어 번역을 맡기고 공증을 받아 제출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장면 5>
2010년대 후반의 얘기다. 열의는 넘치지만 존경받을 만한 행태는 보기 힘들었던 S 교장은 야심에 찬 프로젝트들을 막 던짐으로써 가뜩이나 업무에 짓눌린 교사들을 더 힘들게 했다. 한번은 영어 교사들을 교장실로 모두 불러 앉히더니 우리 학교 홈페이지와 브로슈어를 영어로도 만들라고 지시했다. 어느 학교든 홈페이지나 브로슈어를 들여다보면 알게 된다, 학교 소개와 온갖 안내 사항에서부터 여러 활동 상황, 심지어 정보공개까지 별의별 항목과 내용이 넘쳐난다는 것을.
단순한 생각이다. 영어 교사니까 이 정도는 금세 만들 수 있다는... <장면 3>에서 언급했듯 단순하게 1대 1로 옮기는 용어가 상대편에서 조응하는 개념을 보장하지는 않으므로 우리말 안내서를 영어로 바꾸는 일은 또 다른 능력과 사고 체계를 요구한다. 여럿이 달려들어 협력하면 될 일이지만, 단지 영어 교사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잔말 없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수긍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수업과 업무 외에도 형식에 가까운 서류 일에 지친 교사들에게는 단지 하나의 일거리가 아니었다. 가르치는 일과는 다른 능력을 요구하는, 완전히 엇나가는 분야였고 교장은 아무도 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사실에 화를 냈다. 무슨 국제학교도 아닌데 굳이 영문 홈페이지를 찾아볼 사람도, 영문 브로슈어를 읽을 사람도 없으니 말 그대로 '전시성' 업무였다. 그런 애먼 곳에 시간을 뺏기느니 교장에게 밉보이더라도 본연의 일에 충실하겠다는 생각들이었을 것이다.
<마무리>
기억나는 대로 여러 사례를 늘어놓았는데, 단순하게 대학교에 비유하자면 이렇다. 전자공학과 교수라서 그 대학교 전산실을 관리하고, 회계학과 교수라서 그 대학교 회계 일을 하고, 행정학과 교수라서 그 대학교 행정실 일을 하고, 건축학과 교수라서 신축 건물 설계를 하고, 조경학과 교수라서 캠퍼스에 나무를 심고, 법학과 교수라서 송사의 변호를 맡고... 대충 봐도 이런 건 상상할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많은 중고등학교에서는 비슷한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다행히 사회가 발전해감에 따라 이런 관례도 점차 사라지고 있으니, 앞으로는 학교도 더 선진국다운 시스템으로 바뀌기를 기대한다.
아무리 대학교가 아닌, 동료들의 사랑과 정이 넘치는 중고등학교라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인 것이다. 뭐 그렇게까지 공사 구분을 삭막하게 하냐고 한다면, 다르게 말해 남의 능력을 '날로 먹겠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