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itar Duo <Botti> 연주회
원래는 Guitar Quartet <Botticelli>였다. 그 당시 발매한 앨범 중 Enrique Granados의 <12 Danzas Espanolas>를 사서 들었는데 그야말로 '명반'이었다. 그 뒤 어찌어찌한 사정으로 Botticelli Quartet 중 두 명이 Botti Duo가 되었고, 코로나 시국에도 불구하고 연주회가 열려 오랜만에 세종문화회관을 향했다.
이 Guitar Duo의 연주는 실로 명불허전이다. 전공, 프로, 유학, 콩쿠르 입상 등의 어휘 나열만으로는 두 연주자의 화려한 배경과 실력을 설명하기에 역부족이다. 이미 세계적 수준이 부럽지 않은 테크닉과 내공으로 역동의 20대를 보낸 두 연주자는 숙성의 30대를 유감없이 내보여 주었다.
하지만 무대는 역시 프로들에게도 어려운 것인가... 긴장한 탓인 듯 간간이 실수가 있었는데, 첫 곡인 Brahms의 주제와 변주에서 스케일을 왕창 까먹은 게 제일 컸다.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군 제대 직후 멋모르고 그 곡을 가지고 콩쿠르에 나간 적이 있는데, 나에게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예선에선 잘했는데 본선에서 딱 그 부분을 까먹었던 거다. 아차 하는 순간 스텝이 엉키면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신없이 빠르고 어려운 지점이다. 반주 파트가 혼자 하는 사이 어쨌거나 수습하느라 진땀이 났으니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프로가 정확히 같은 곳에서 실수하는 걸 보다니... 나도 모르게 나오는 미소와 함께 속으로 스며드는 묘한 안도감! 무대에선 프로들도 까먹는데 어린 아마추어가 뭐... 히힛! 수십 년 간격으로 우연히 겹쳐 보이는 불운 덕에 아직 2% 남은 것만 같았던 트라우마 찌꺼기가 말끔하게 치유되는 것 같았다.
누구나 무대에선 실수를 한다. 20세기의 전설이었던 Narciso Yepes는 생전에 내한 공연에서 Bach의 Chaconne BWV 1004를 연주했다. 잘 나가다 아뿔싸, 중간에 반 마디 정도를 까먹는 게 아닌가! 그런데 중요한 건 깜빡 잊은 사태가 아니었다. 스리슬쩍 아닌 척하고 이어붙여 넘어가는 장면에서 그만 탄성을 삼켜야 했다. 그런 경지가 바로 대가의 위엄이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체험한 거다. Guitar Duo <Botti>의 연주 역시 최고의 경지라고 할 만하기에 조금 잊는 정도의 얕은 실수는 더 깊은 감동 속으로 충분히 묻힐 수 있었다.
다만, 중간중간에 마이크를 잡고 곡 설명을 한 건 청중을 위한 친절한 배려였지만 연주의 본질과 거리가 있는 얘기가 섞이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다. 연주회를 준비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언니는 왜 나하고 같이 듀엣을 하는지 묻는 등의 사사롭고 지엽적인 대화는 자칫 음악만을 생각하고 온 청중에게 넋두리를 늘어놓는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옥에 티를 꼽으라면 딱 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