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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한 재활용의 길

볕좋은마당 2019. 7. 24. 22:53

살다 보면 물건을 내보내는 일보다 들이는 일이 많아진다. 이사를 할 때마다 버리고 버렸건만, 또 다른 물건들이 제 집을 찾았다는 듯 시나브로 들어온다. 저절로 집이 넓어질 리는 없으니 물건을 버려서라도 인간의 공간을 넓혀야 한다는 결의를 다졌다.


제일 만만한 건 역시 책이다. 수년에서 수십 년 쌓아만 두었던 책들을 우선 '도태'시키는 걸로...('옛정'에 호소하는 듯한 표정을 무기로 이번에도 살아남은 책도 있으나, 그렇다고 미래가 아주 보장된 건 아닐 테다.) 기왕에 공간 확장 차원이었으니 최대한 과감하게 나가기로 했다. 언젠가 볼 것 같아 버리지 못하지만, 살아보니 결국 안 볼 책은 10년이 지나도 안 보게 된다. 


천장에 거의 닿을 정도로 키 큰 책장 중 하나와 또 다른 책장의 일부를 '완전~히 뽀개기'로 했다. 책장의 재료가 싸구려 MDF나 PB가 아니고 그나마 집성목이라 분해하여 내버리기보다는 재활용을 할 요량이었다. 책장이 공장 제품일 경우 뒤에 막은 합판은 거의 '타카(라고 보통 부르는 Tacker)'로 박았기 때문에 떼어 내려면 여간 고생스러운 게 아니었다. 타카 침을 제대로 빼내지 않으면 톱날을 망가뜨릴 수도 있어서 재활용의 길은 고생길이 되고 말았다. 기타 연습은 커녕 그냥 오므려도 아플 정도로 왼손을 상하게 한 주범이 바로 타카 침이었던 거다. 자원을 아낀다고 시작한 일이 새 나무로 뭔가를 만드는 것보다 몇 배 힘들게 되었으니, 남이 만든 문서를 편집하는 게 새로 만드는 것보다 훨씬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고 보면 세상 돌아가는 건 어디나 비슷하다. ㅜ.ㅜ


아무튼 며칠을 공방에 드나들며 작업을 했다. 책장의 원재료 폭이 좁아 두 쪽을 이어 붙여 '수제' 집성목을 만들어야 했다. 면적이 넓다보니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 버벅버벅... 우여곡절 끝에 오디오와 스피커를 덮는 선반과 그 무게를 나누어 가질 자잘한 상자도 만들어 설치했다. 이제는 잘 쓰지 않는 오디오를 치우라는 아내에게 '나의 마지막 남은 로망'이라고 (목숨 걸고 ㅠ.ㅠ) 우기며 보란 듯이 시간과 품을 들여서 완성한 거다. 하기사 아파트에서 살아야 하는, 거의 이어폰으로만 음악을 듣는 사람이 제대로 빵빵 뿜어내는 스피커 소리를 언제 들을 수 있을까만은, 이것마저 없앤다면 한 가닥도 안 되는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는 것이리라. 로또라도 당첨된다면야 한적한 전원주택이라도 사서 원 없이 소리를 키우고 듣겠지만 그것도 우선 로또를 사야 가능한 일이다. (젠장!)


볼펜으로 마구 계획을 했다. 스케치는 허접해도 치수가 조금이라도 틀리면 난감한 일이 벌어지곤 한다. 만들면서 아차 싶어 보면 좌우가 바뀌기도 했던, 아마추어라면 어쩔 수 없이 겪는 일도 있었다(외과 의사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여러 날을 해체와 재단, 조립과 설치에 땀을 쏟은 결과 나름대로 성공적인 재활용이 되었다. 엄청난 일도 아닌 것 같았는데 쏟아져 나온 책에 악보에 온갖 잡동사니로 며칠 동안 온 집안이 폭탄 맞은 것 같았다. 책을 선별해 버리고 재배치하는 것도, 무거운 오디오를 이리저리 '욱여넣는' 것도 일이었으니 세상의 모든 정리정돈은 결국 엔트로피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라 힘이 안 들 수가 없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