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와 바꾼 여름
평생 남의 밑에서 일해 본 적도, 자신의 노동으로 천원도 벌어본 적 없을 것 같은... 그래서 서민의 주거불안을 알 리가 없을 것 같은 어느 '댓통령'의 무대책에 토끼몰이를 당하고 말았다. 2년 넘게 살아 본 집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사를 다녔는데, 이제는 귀찮고 힘들어서도 더 이상 떠돌이 생활은 아니다 싶었다. 결국 정착하기로 한 집은 바로 옆동!
분양 이후 뭐 하나도 손을 대지 않아 모든 게 Default 상태인 집이라 결국 모두 수리를 해야만 했다. 아파트라는 게 외벽보다는 내벽이 거의 다라서 도배-장판-페인트만으로도 새 집처럼 되는 잇점도 있다.
Before... 처참해 보이지만 새로운 희망을 품고 있는...
After... 돈을 들이면 이렇게 된다. ㅋ
Before... 덕분에 거실 벽체가 저런 식으로 발라져(?) 있다는 걸 알게 됐다.
After... 사실 화학물질 냄새 빠지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여름이라 문을 다 열어놓을 수 있어서 다행.
수리가 모두 끝나고 본격적인 이사가 시작되었다. 2년 전에도 옆동에서 이사왔는데 그땐 포장이사를 이용했다. 옆동이라고 해서 이사 비용이 싸지 않다는 건 상식. 그런데 좀 억울한 건 이삿짐을 실은 차가 꼴랑 10m 이동하여 다시 짐을 올렸어도 같은 값을 내야 했던 거다.
그래~서! 이참에 이삿짐 센터를 부르지 않고 나 혼자 이사를 하기로 결심. 포장이사라고 해도 말이 그렇지 짐을 풀어 아무렇게나 막 넣고 가기 때문에 결국 한 달은 다 빼고 제 자리에 넣는 일은 피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어차피 수리 끝난 집은 한동안 비었겠다, 바로 옆동이니 엘리베이터 타고 지하 주차장을 통해 왔다갔다 나르면 될 것 같았다. 게다가 방학 중이라 시간도 있으니... 하나씩 야금야금, 호시탐탐, 시나브로 나르면 못할 것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아침 5~6시에 잠에서 깨면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밥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 거의 종일 동과 동사이를 왕복했다. 아... 인간이 사는 데 웬놈의 자잘한 짐이 그리 많은지, 이건 뭐 끝도 없이 뭐가 나오는 거다. 다른 집에 비하면 그래도 세간살이가 단출한 편이라 믿고 살았는데, 카트에 짐을 실어 하루에도 수십 행보를 하다보니 슬슬 후회가 밀려왔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카트를 여기저기서 빌리고 새로 구입하기도 하여 다양한 크기의 짐을 무려 2주간 날랐다는 전설... ㅜ.ㅜ 마침 대학생 아이도 방학이라 많이 도움이 되긴 했지만, 주로 밤새도록 게임하고 대낮까지 '주무시'느라 대부분의 노가다는 내 몫이었다. 아래는 그동안 나의 손발이 되어 준 박스와 카트들이다. 제일 큰, 철로 된 카트는 직장에서 빌렸는데 자체 무게가 15kg는 되는 것 같았다. 젠장... 어쨌거나 혼연일체가 되었던 주인님을 향해 늠름하게 도열한 카트들. 빰빠라밤~!
문제는 냉장고, 세탁기, 소파, 침대 같은 큰 짐들... 무슨 대륙의 기상이 내 안에서 발동했는지 다 나를 수 있다고 큰소리 쳤는데, 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극구 말리는 거다. 자칫하면 호기 부리다가 병원 신세 진다고... 냉장고도 까짓것 바퀴 두 개가 달려 있으니 굴리면 될 것 같았고 침대야 뭐, 분해해서 엘리베이터에 들어가기만 하면 될 것 같았고... 이런 식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카트를 밀며 하염없이 왕복하다보니 어떤 날은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체력과 인내가 바닥날 지경이 되었고, 결국 못 이기는 척 주위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동네 이삿짐 센터 아저씨 두 명을 불러 수고비를 드리고 냉장고, 침대, 돌소파 등을 옮기는 것으로 낙찰. 사실 소파나 세탁기 같은 것을 이미 아이와 같이 날랐기 때문에 조금만 더 힘을 냈으면(?) 가능할 것도 같긴 했건...만... 그 누구도 모르는 법. 괜히 객기 부리다 갈빗대 하나 나갔을 지도...
뻘뻘 땀 흘리며 큰 짐을 나르던 아저씨들은 나 혼자 다른 짐을 다 날랐다는 걸 알고는 '혼자 이사하는 사람 처음 봤다'고 했다. 칭찬인지 감탄인지, 또라이라는 비아냥인지는 모르겠으나... 뭐 어떠랴. 이렇게 한 번 이사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런 경험은 이것으로 끝내련다. 마이 묵었다 ㅜ.ㅜ
왜 사람들이 이삿짐 센터에 돈 주고 맡기는지에 대한 '처절한' 깨달음도 있었으니 몸은 힘들었어도 수확이 있기는 한건가?
아무튼...
꼬박 2주 걸려 'Self' 이사를 하느라 기타는 케이스도 안 열게 되었으니... 손가락이 모두 나뭇가지처럼 뻣뻣해졌다. 그리고 나서도 정리하랴, 공방 가서 가구 만들랴... 이래저래 한 달은 기타를 만지지 못했고, 이제 조금씩 손가락의 움직임을 '복원' 또는 '재활'하는 중이다. 어차피 여름엔 더워서 방문 닫고 녹음도 할 수 없기도 했고...